만약 나의 불운을 빨리 알 수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런데 만약 불운을 알 수는 있지만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악몽이고 비극이라고 생각했던 작년을 떠올려보면 그랬다. 그렇게 다양한 시도와 많은 노력을 하면서 아등바등 살지는 않았을 거다. 어쩌면 무기력하고 심각한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작년은 1월부터 9월까지 월요일은 연극반, 수요일은 피아노학원을 퇴근 후 다녀왔다. 봄부터는 한 달에 한 번은 북카페에서 무료 근무를 했고, 방통대 학위 과정 마무리와 강연자 과정까지 이수하는 그런 알 수 없는 열정이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8월에는 회사 구조조정으로 감원의 피바람 속에서 살았고, 빠져나올 때는 집문제로 집주인과 전쟁이 시작됐다. 거기다 원래 살던 집에 리모델링을 하다가 발견된 위층 누수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바쁘게 살았다고 해서 인생에 그런 선물과 보상만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쓰나미 같은 파도가 쉬지 않고 몰려왔다.
만약에 그런 나쁜 일이 쉬지 않고 찾아온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숨도 못 쉬고 몸져누워있었을 것이다. 나의 능력은 노력으로 올릴 수 있는데, '운'이란 녀석은 노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몰랐기에 열심히 살았다. 칩거한 이년의 시간을 보상하는 것처럼. 다들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나만 지하 세계로 침몰하는 두더지가 된 기분으로 살았으니까. 작아진 마음, 움츠러든 어깨를 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한 고비를 넘어설 때마다 단단해지는 것 같다가도 가끔씩 무너져 내리는 마음.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일희일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두부멘털이지만 굳이 종교를 찾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두 번 살고 싶지 않아. 천국도 극락도 원하지 않아. 이왕 태어났으니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부단히 노력하지만. 한 번 태어났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보고, 궁금한 건 다 경험해 보고, 그렇게 살다가야겠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오늘을, 어제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영혼까지 끌어올려서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