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엄마 또래의 A님 이야기를 들을 일이 있었다.
아들과 몇 년 만난 여자친구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라는 직접적인 의견 대신 결혼 준비 과정을 최대한 늦추는 전략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연애, 미뤄지는 결혼 이야기와 과정 속에서 결국 아들과 그 여친은 헤어졌다. 둘이 사랑하는 시기에 대놓고 반대를 했다가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더 불타는 사랑을 만들 수 있으니,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는 방법이었다.
전략도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오래전에 들었던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나이'를 문제 삼으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소심한 반대를 시작하셨다. 그게 대놓고 '안돼'가 아니라 어느 날 '나쁜 꿈'을 꾸었다. '사주가 나쁘다' 등등 알 수 없는 무속신앙을 근거로 들었다.
그렇게 사주를 맹신하는 그분은 독실한 교인이셨다. 싫은 이유 중에 내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도 싫었고, 싫은 이유를 만들어서 싫었다.
분명 그분이 나에게는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교양을 중시했고, 체면이 필요했다. 단, 그분의 아들에게 일부로 욕을 했다. 그건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들으라는 말인 것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모멸감을 느끼도록, 몇 시간이나 꿈자리와 입에 담을 수 없다는 엄청난 사주이야기를 했다.
그분이 원하는 것도, 그분이 지금 나에게 하는 태도도 명확했다. A님처럼 최대한 시간을 끌기였다. 꿈도 딱 한 번 꾼 것인데 그 악몽을 6개월째 듣고 있다.
최대한 만남을 피하고, 만나서는 꿈과 사주를 이야기하고, 이번에는 돈 문제, 다음에는 건강 문제로 결혼 관련된 이야기를 말도 꺼내지 못하도록 하셨다. 다음 달에 다음 달에.
다시 이번에는 내년 3월이었다. 이유는 형이 그때 귀국하니까...
또 내년 3월이 되면 5월을 말하고... 무한반복 속에서 애들의 마음도 식을 것이고, 결혼이 미뤄지니 둘 사이도 티격태격을 반복할 테니, 결국은 알아서 정리될 것이라는 그분의 마음이 정확히 읽혔다.
한결같은 그분의 태도와 그분 아들의 마음이란. 자식을 본인이 만든 틀 안에서 벽돌처럼 구워내려는 그 마음을 벗어난 경험이 없는 그분의 아들은 방황한다. 그저 마음으로.
내가 만난 암초는 선택하지 않은 자연재해였다. 다만 이 암초를 넘어설지, 게임을 포기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지를 고민하고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았고, 기다려 보았다. 이제는 나의 선택만 남았다. 나는 이번 쓰나미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유리멘털에게는 쓰나미가 끝이지 않는 걸 보니, 삼재라고 하는 폭우의 시기에 들어선 것 같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뭘까? 잠을 더 푹 자고, 마음과 몸이 다독여야 하는데.... 젠장, 세상에 바쁜 일들이 이번 주에 다 몰린 건 왜일까?
언제나 다음, 다음을 말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자연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전략은 훌륭했고 성공적이었다. 다른 사람 마음을 피 말리는 업보는 덤으로 쌓으셨고. 어쩌면 가장 나쁜 사람은 그런 어머니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분의 아들이 아닐까.
세상 바쁜 지금, 미운 사람도 많고, 눈에, 마음에 담아서는 안될 나쁜 말이 한가득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모질고 독해지는 걸까?
미워하면 닮는다던데... 이제 푸바오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만 바라봐야지. 어쩌면 내 눈도 귀도 사악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어서 마음을 좀 먹고 있다.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지만 특별히 내 길이 더 힘든 것 같아서 더 추워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