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집에 OO부동산 소장님의 권유로 빈 집에 CCTV를 설치했다.
작년엔 가끔이라도 토요일에 집 보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한 달에 두세 번의 방문이 전부였다. 작년엔 '사람이 들어왔구나' 정도로만 보고 딱히 소리를 듣지는 않았었다.
올해는 가끔 사람이 보이면 소리도 유심히 들어보았다. 그만큼 집이 나가길 간절히 기다렸다.
작년엔 부부로 보이는 사람이 집을 보러 왔다면 올해는 싱글로 보이는 여자와 부모님(CCTV에서 들리는 소리)이 보였다.
위치와 풍경에는 만족하지만 수리가 되지 않은 집 상태에 불만을 가진 것 같았고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제, 오랜 바람과 숙제인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CCTV를 치웠다. 남은 짐을 정리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 다음에도 나와 같은 미혼 여성이 혼자 산다면 또 이런 일이 반복될까? 집주인은 나처럼 피곤한 임차인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부동산 소장님들 말씀은 하나같이 집주인은 자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만 당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보증금을 받았다는 오랜 숙제를 해결했다는 행복도 잠시였다. 올라오는 기차 통로 칸에서 브런치에 글을 썼다. 어제의 상황과 사람들의 대화, 감정을 최대한 자세히 풀어내고 싶었다.
속기사처럼 모든 단어를 다 재현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글을 남기고 싶었다. 브런치 글에서 코딩 궁금증을 해결했던 과거의 나처럼.
낯선 도시에 적응하고 사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 끝은 가시밭을 맨 발로 걸어가는 일이었다.
[ 낯선 도시에서 집을 구하는 사람이 싱글 여성이라면? ]
1. 집을 보러 다닐 때는 혼자일지라도 계약하는 날은 부부나 커플처럼 꼭 누군가(사람을 동원해서라도)와 함께 하자.(부동산 소장이나 집주인에게 싱글임을 보이거나 알리지 말 것)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상은 여자 혼자를 만만한 '타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집주인도 전에 살던 부부에게는 늦은 시간 막말 문자나 함부로 집에 방문하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많지만 소시오패스도 많다. 나를 지키는 건 나의 임무다.
2. 순환근무로 집을 구한다면, 본인의 취향보다는 '이사가 빈번한, 인기 있는 동네와 단지'에 집을 얻는다.
- 물론 이런 사항을 지키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러니 필수라고 적기에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일 년간 안 나가는 집으로 고생을 해보고 나니, 비싼 동네에 집을 얻는 게 결국은 더 이익이었다.
3. 부동산에게 집주인인 임대인이 우선이다.
- 임차인은 한 번 살고 나갈 일회성의 만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임대인은 고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부동산 소장님이 내 편을 들거나,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명심하자. (집 문제로 분쟁이 생기면 내 편은 '법률구조공단'이나 '변호사 상담'으로 해결해야 함)
4. 가능하다면 집주인인 임대인에 대해서(평판 조회) 부동산 소장님에게 물어보자.
- 돈이 많다고 해서 집수리나 '보증금 반환'을 제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기존 세입자와 분쟁이 없는지 꼭 물어보자. 물론 부동산 소장님들이 모두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해도 일부 솔직한 분들을 만나면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5. 안전이 낭만보다 더 중요하다!
싱글 여자가 어딘가에 집을 얻는다는 것은 남자보다 하나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다. 깔끔한 인테리어보다 집 주변의 치안과 같은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부산에 먼저 순환근무를 했던 사람들, 부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닷가 근처에 집'을 권유했다.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바닷가 풍경과 여행지 특유의 낭만이 있는 곳을. 물론 그분들의 조언은 감사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의 선택을 했다.
부산 발령 몇 달 전에 가족과 부산 여행을 했었다. 그때 나는 해운대 바닷가에 있는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하지만 '거주'를 위해서 산다면 나는 바닷가 근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관광객이 많은 지역은 술집이 많고, 밤새 폭죽놀이와 취객들이 가세한 소음이 있었다.
나는 온전히 잠을 잘 수 있고, '찐 부산사람'처럼 생활하고 싶었다. 집을 고르는 장소는 술집이 없지만 지하철이나 자차로 운전하기 좋은 '교통' 좋은 곳 그리고 '평지'인 곳을 찾고 싶었다. 언덕 많고, 밀집된 부산에서 쉽지 않은 조건을 우연히 발견했다.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타고 인수인계를 마치고 가다가 어떤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버스에서 내렸다. 근처 부동산에 들어가서 집을 알아보고 그다음 날 바로 계약했다.
한눈에 콩깍지가 씌운 지역은 비쌌고, 대출을 받아서 겨우 들어갔다. 집을 얻고 보니 그곳은 부산지방법원 테니스장 바로 옆 아파트였다.
법원 직원들은 아침 6시부터 테니스를 치는 사람이 많았다. 창문을 열고 자면, 알람을 듣지 않아도 '테니스 공' 과 부딪치는 경쾌한 라켓 소리로 눈을 뜰 수 있는 곳이었다.
술집이 없고 교통이 좋은 곳인 이곳은 종합운동장역. 학군이 발달해서 학원 밀집 가라는 것을 살다가 알았다.
어쩐지 집값이 비싸고, 위층에 애들이 방방 뛰더라니... 부실 공사가 의심되던 그 아파트는 낮에는 아이들이 뛰고, 밤 10시 이후에는 위층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와 대화 소리를 한 집처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만은 없었다. 평지에, 교통 좋고, 배수 좋고(부산은 물난리 나는 지역이 있음), 치안이 훌륭한 동네였다.
그러다 집주인이 바뀌어서 '문제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문제의 집을 통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하지만 나의 사회적 미숙함도 깨달았다.
게으르고 적응도 어려운 나는 한 동네에 오래 살았다.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부동산 세계'나 집을 볼 때 고려할 점을 영원히 몰랐거나 더 늦은 나이에 고생했을 것이다.
나이는 어른이지만 사회적 경험 부족은 20대 사회 초년생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알고, 세상의 일부를 배웠다. 그리고 에너지와 돈도 많이 썼다. 너무 비싼 과외비라서 혼자만 갖기에는 아까웠다. ㅎㅎ
그래서 브런치에 비싼 과외의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