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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Nov 13. 2023

결핍 장애를 진단받다

 어제 누군가의 잘못과 단점을 콕 집어서 지적한 후, 반대로 나의 단점과 보고 싶지 않았던 근원적인 문제까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모조리 듣게 되었다.


 어떤 건 알고 있었고, 어떤 건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그 실체를 몰랐던 것도 있었다. 몰랐던 부분은 억울함이었다. 나의 언어와 문장에는 억울함이 서려 있다고 했다. B는 말했다. 그러다 너 나이 들면 '한 맺힌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여서 '결핍장애'라는 나의 병명을 만들어 주었다. 결핍이 있으니 '나는 특별하다'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삐딱한 나의 시선에 '결핍이 있으니'라는 마음 있다고.


 결핍이란 아픔은 분명 나에게 자기 계발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나의 마음에 큰 짐이 되었고,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으로 성장했다. 


 나아가서 내 안의 '결핍'과 타인이 나에게 준 '부당함'이라는 요소가 더해져서 안 그래도 작은 마음을 더 작게 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 들었다. 나도 나를 예뻐하지 않으면서 '자기 연민'에는 깊게 빠지는 모순 속에 오랜 시간 갇혀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내가 아닌 나를 가까이 본 타인이 콕 집어서 알려주었다. 듣는 순간,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남들보다 내가 더 가진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남들에 비해 없는 것만 찾아내고 바라보던 내 마음이 투명하게 보였다는 것도 무조건 인정이었다. 나는 타인과 내가 다른 점에 유난하게 반응했다. 브런치에 쓰기 좋은 글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의 구멍이 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B의 이야기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에 억울함이 더해진다면 '한 맺힌 영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B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나였고 아빠였다. 


 아빠는 재능은 있었지만 열 살 무렵부터 일했고, 가족을 부양했다. 누구의 도움도 아닌 혼자서 세상을 살았고, 가족들은 주는 것 없이 받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외로웠고, 외로웠기 때문에 더 까다로운 사람으로 살아간 아빠. 그런 아빠를 미워하면서도 아빠를 가장 닮아 있는 나였다.


 나는 아빠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바꿔야 했다. 나는 아빠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하니까.


 타인도 세상도 바꿀 수 없으니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나의 시선과 시야였다.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나는 해내야지'라는 마음과 '언젠가 원하는 걸 이루는 날도 있겠지'라는 둥글둥글함으로 살다 보면 '삐딱한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내 마음속 열등감이라는 아이를 인정하되 거리를 두기로 했다. 열등감은 인생에 에너지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수가 많아지면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 약과 독이 되는 존재였다. 그렇게 열등감과 결핍이라는 내 안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은 좀 더 둥글둥글한 시선으로 차가운 아침을 시작하는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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