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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Sep 09. 2024

우린 유전자가 닮았지

 사람들 각각의 고유한 성격이 있듯, 강아지에게도 나름의 고유한 성격이 있다. 


 첫째 랑아와 둘째 하늘이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반려견이었다. 랑아는 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탐험하는 걸 좋아했다. 한 번도 가보지 우거진 풀길, 처음 가보는 아파트 단지 옆 가로수길, 지하철역 주변의 혼잡한 길 구석구석 바라보고 걸어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눈을 닮아서 인상적이었던 이 아이는 성격마저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단체로 움직여야 하는 군사시대를 살아냈던 아빠처럼 랑아는 질서를 사랑했다. 가족 모두가 다 같이 걸을 때 크게 웃고,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바쁘게 흔들며 뛰어다녔다. 그중 누군가가 다른 방향으로 가는지 몇 발작 걷다가도 수시로 뒤를 돌아보고, 누군가가 다른 방향으로 가면 짖거나 따라가서라도 같은 방향으로 바꾸려 했다.


 명절에 다 같이 모인 집에서는 현관문 맞은편에 누워 있으면서 누가 나가는지를 확인했다. 잠드는가 싶다가도 새벽 두 시가 되면 불 꺼진 집을 베란다부터 안방, 작은방 두 군데를 샅샅이 열고 다니면서 가족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랑아는 길쭉한 코와 앞발로 문을 여는 재주가 있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귀가를 확인했고, 한 명이라도 나가서 들어오지 않으면 현관문 앞, 차가운 대리석에 주저앉아서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감시견이기도 했다.


 밖에서 산책할 때 보면 웃음 많은 강아지인데, 집 안에서 현관문을 바라보는 늠름한 눈빛은 군용견처럼 늠름했다. 랑아가 온 이후로 차가운 집 안에 훈훈함이 감돌았다. 입양을 강하게 반대했던 아빠와 엄마도 랑아를 데리고 내려온 날은 일찍 퇴근하셨다. 그리고 평생 안 하던  동네 산책을 하는 날은 랑아가 놀러 온 날이었다.


 놀러 다니기 바쁜 남동생도 랑아가 현관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모습의 사진을 몇 장이나 받고, 전화 독촉에 시달려서인지 귀가 시간이 몇 시간이 빨라졌다. 랑아와 부모님 집에 내려간 날은 가족 모두가 모이는 '단합대회'가 되는 날이었다.


 유난한 성격, 호기심 많은 중형견 랑아가 집에 온 다음,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즐기던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사람인 나도, 큰딸인 나도 갖고 있지 않은 엄청난 매력과 에너지였다. 그렇게 차가웠던 가족 사이를 소리소문 없이 가깝게 만든 랑아였다.


 다 같이 움직이고, 다 같이 모여 있어야 한다는 옛날 사람의 생각이 아빠였다. 그 아빠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나였고, 그다음은 랑아였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종으로 태어났지만 닮은 곳이 너무나 많았다.


 어쩜 우리는 유전자 어느 부분이 닮은 게 아닐까? 랑아의 행동은 나를 돌아보게 되고, 아빠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널 보면 마음이 찡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행동을 말한다면 그건 2014년 봄, 첫눈에 반한 랑아를 집에 데려온 날이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우린 가족이 되었다. 


 출근이 유난히 힘든 날은 랑아를 쓰다듬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 에너지의 원천, 하루를 버텨낼 에너지. 우린 유전자도, 마음도 닮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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