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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Aug 31. 2024

보고픈 랑트레이너

 드디어 퇴근 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이 왔다.


 회사의 바쁜 일정과 건강 문제로 반려견들을 동생에게 보낸 지 일주일이 흘렀다. 퇴근길, 하루종일 배변을 참고 있을 강아지들을 생각하며 서둘러 퇴근길에 올랐던 조급함이 사라졌다.


 퇴근 후 급하게 저녁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한두 시간의 산책을 하는 일정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했지만 퇴근 후는 또 다른 일상의 시작이라 늘 바빴고, 힘들었다. 가끔 몸이 아픈 순간에도 걸어다 멈췄다를 반복하면서 아이들 산책을 도왔다.

 그런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간 지금 나의 일상은 어떨까?


 퇴근길, 막히는 도로를 지나면서도 마음에 여유가 흘렀다. 사랑스럽지만 언제나 마음 졸이며 아이들을 챙겨야 했었다. 반려견들이 떠난 후, 더 늦게까지 일했고, 집에 와서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몰아보는 시간 사치를 누리고 있다. 더하여 더 늦게 자고, 아침에는 눈을 뜨지 못해서 진한 커피 두 잔을 들이켜고는 어쩔 수 없이 또 하루를 시작한다.


 반려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책을 했던 시간은 유일한 나의 운동 시간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떠난 시간, 나는 소파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넷플릭스 시리즈가 재밌어서 몰아보기 시작했지만 요새 보고 있는 시리즈를  보자면... 그저 틀었을 뿐이다.


 넷플릭스를 켜는 어떤 법칙이 생긴 것처럼, 그렇게 그저 보았다. 어제 4회까지 몰아본 시리즈 역시, 남편은 좋아했지만 나는 좀처럼 스토리에 몰입하지 못했다. 스토리에 맞지 않는 29금 장면이 갑자기 왜 튀어나왔지 와 인터넷 게임을 드라마로 옮긴 것 같은 장면에서 흥미보다는 지루함을 느꼈다. 같이 본 남편은 재밌었고 나는 중간중간 눈을 감았다.


 여유로운 시간을 불쾌한 영상을 채운 것 같은 이 느낌이란... 반려견들이 떠나고 몇 kg는 더 살이 찐 것 같은 체지방, 야구나 넷플릭스, 유튜브를 더 많이 보면서 생기는 '도파민 중독과 그 후유증', 수면 부족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후 독서를 더 많이 하겠다며 준비한 책은 2주를 지나서도 한 권을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혀 있었다. 나는 지금 내 일상을 채워주고 달리게 해 준 반려견 트레이너님을 기다리고 있다.


 건강 문제가 있어서 며칠 후에나 볼 수 있지만 이 시간이 지나가면 아이들과 걸어 다닐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삶의 소중한 시간과 공간을 채워준 랑트레이너. 그리고 너의 건강한 미소로 내 일상도 같이 빛났던 거구나.


 소중하고 소중한 랑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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