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다는 건 행복함과 피곤함을 동반한다.
집에 들어온 순간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다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새로운 출근을 시작한 기분이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동네 산책을 급히 나가야 한다. 나는 이제야 쉬고 싶은데, 강아지는 하루종일 쉬다가 이제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니까.
그렇게 서로 정반대를 원했고, 나는 끌려 나온 사람이었다. 어쩌면 투명한 목줄을 한 사람은 나, 손잡이는 강아지가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끌려 나왔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공기, 영하 십도 밑의 차가운 한기를 뚫고 나왔다. 그렇게 끌려 나와서는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인지, 반려견 성격은 어쩜 이렇게 주체적인 아이인지... 투덜거리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끌려 나온 산책길이 끝날 무렵 지치기도 하지만 어떤 활력감이 소소하게 살아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소소한 기쁨이 방울방울 뭉쳐서 지금의 나로 다시 태어난 게 아닐까?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울함과 무력감이 5대 5 비율로 섞여 있었다. 그런 슬픈 마음의 농도를 희석시킨 지점 어딘가에는 랑아가 있었을 것이다.
반려견이 있다면 즐거움만 가득할 거라는 상상은 현실과 달랐다. 반려견을 처음 키우다 보니 하나에서 열까지 헤매고 있었다.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까지 답답한 시기도 있었고, 동물병원 여기저기를 검색할 일도 생기고, 장거리 여행은 피하게 되고... 얻게 되는 행복만큼 참아야 할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좋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반려견이 생기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일도 생기고, 사이가 멀어질 일도 생긴다. 신기했던 건, 놀던 반려견들이 싸우면 사람들 간에도 금방 서먹해진다는 것... 그렇게 강아지싸움이 사람과의 거리까지 조절한다는 점이, 육아와 비슷해 보였다.
한때 강아지 목줄 의무화 전 시기에 동네 강아지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가 있었다. 거기에 가면 다양한 종의 강아지, 예쁜 강아지옷, 화려한 미용으로 시선을 끄는 강아지까지 최신 유행 트렌드를 볼 수 있다고나 할까?
캠핑 장비까지 챙겨 와서 자리를 잡고 강아지를 챙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뭐가 그렇게 어렵고, 소심해지던지... 이런 나와는 정반대로 강아지들 사이에서 가장 바쁘게 뛰어다니는 랑아.
그렇게 어색함을 못 견디고 구석에 서있는 나를 한가운데로 데려가는 랑아였다. 어쩌면 초내향인을 향한 랑아의 '인간 사회화 훈련'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친구가,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