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원망이 하루 종일 감돌고 있었다.
오랜 감정이 주기적으로 찾아올 때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
해묵은 숙제가 다시 찾아오는 월요일이었다.
원망이라는 감정은 타인을 미워하면서 시작하고, 나를 자책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때 왜 더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때 속상함을 터놓고 말하지 못할까, 왜 나는 그 앞에서 작아지는 걸까? 왜 가만히 그 상황을 넘어가서 이토록 오래 아파할까?
무기력은 그로 인한 절망감과 자포자기한 마음이 어우러져서 꼬리표처럼 따라왔다. 나는 도대체 어쩔 수 없는 존재라고 작은 키를 더 작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해답 없는 문제들만 가득 들고 와서는 핸드폰 속 시답지 않은 뉴스, 드라마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마음의 위안은커녕, 한심한 나를 더 한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게으르고, 무기력해서 마음의 병은 낫지 않는 것일까? 마음의 병이 길어질수록 뾰족한 고슴도치 털처럼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슬퍼하고 있었다.
다들 앞으로 앞으로만 걸어가고 있는데 안 그래도 느린 내가 더 멀리 서 있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림자가 유난히 커지는 날은 부동산이라는 주제로 말할 때였다.
그동안 얼마나 철없게 살았는지, 재테크는커녕 여기저기 잘 쓰고 살아온 과거가 부끄럽고 한없이 죄스럽게 느껴질 때는 집값에 대해서 말할 때였다. 다들 일찍부터 마련한 집 한 채의 가치는 내가 가진 것과는 비교선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회사는 감원을 부르짖는데, 모아둔 자산도 그다지 없다는 것은 풍전등화라는 고사성어가 딱 어울렸다. 그렇다고 주변에 의지할 곳도, 지원을 받을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주말에 잠시 나눈 대화에서 나의 위치가 얼마나 허술한 지는 유감없이 드러났다.
이제야 찾아보는 관심 가는 동네 24평은 10억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강남이 아니어도 최근 갑작스럽게 오른 금액을 보니... 서울 하늘 아래 집을 산다는 것은 가능한 꿈인지를 의심하게 됐다.
30대라면 영끌을 해서라도 감당할 시간이 있다. 40대가 되면 신중해서가 아니라 회사에 다닐 근무기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차마 영끌을 감행할 자신감이 사라진다. 물론 과감한 성향의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보다 어린 나이가 부러운 건 조급해 보일 지라도 어떤 선택을 감행할 자신감과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가진 자산이 작아도 너무 작아서 감원 시기가 찾아오면 작은 움직임에도 바싹 오그라드는 신경초로 변신하곤 한다.
감원이 처음도 아닌데 그동안 나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나? 왜 그때도 지금도 달라진 건 없는 것일까? 왜 그동안 더 열심히 모으지 못했을까?
이런 나에게도 인생에 한 번의 기회는 올까?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번에 살아남는다면 그것도 기회가 아닐까?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토요일에 찾아가는 문화센터 교육마저 사치로 느껴지는 지금의 마음 온도는 차가운 시베리아 한복판이었다.
이런 시기도 나에게 어떤 의미와 변화가 시작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