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다가왔다.
오래전에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있었다. 어렵게 취직을 하고도 그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그냥 싫어'라는 팀장의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매일 무엇을 잘못해서 혼나고 조롱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했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에 나를 맞추려고 애썼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수시로 열리는 저녁 번개 모임에도 빠진 적이 없었다. 몸과 마음이 망가졌던 이십 대 후반이었다.
그렇게 힘들고 외로웠던 시기에 가까웠던 건 팀 선배였다. 물론 그분도 팀장과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나를 싫어했고, 돌려서 욕하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매몰차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따뜻한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한사온이라는 겨울 날씨처럼 들쑥날쑥한 성격의 악당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녀의 화려한 언어와 과장된 행동에 완벽히 가스라이팅 되었다.
그렇게 악당과 가까워졌고, 회사 내에서도 고립되었다. 그때는 내가 고립된 줄도 몰랐다. 사내에 발이 넓은 악당이 알려준 소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으니까. 그렇게 악당과 주중과 주말을 함께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한 개의 도움을 받고, 아홉 개의 부당한 지시와 요구를 당당하게 하는 악당과 멀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인사이동이 생기면서 멀어졌지만.... 그것도 나만의 노력의 결과는 아니었다.
악당이 이용할 만한 무언가가 부족했기에 멀어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집착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을 테니까.
십 년이 지나서 다시 악당과 한 팀에 근무하게 되었다. 이번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악당이 새로운 팀에 적응을 해야 했고, 경력자인 나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악당은 한 번에 다가오지 않았다. 별 것 아닌 도움을 주려 하고, 막말을 하던 입에서는 '극존칭'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서서히 다가왔다.
언뜻 보기에는 예의를 지키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오랜 나의 경험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악당은 얻어낼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띠동갑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본인보다 훨씬 어린 사람에게도 90도로 인사를 하고 극존칭의 단어를 사용했다. 반대로 별게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막말이 시작되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함부로 지시를 하고 심부름을 시키면서 막말을 이어나갔던 사람이었다. 과거의 나는 왜 그 걸을 잠자코 듣고 있었을까?
여하튼 그녀가 현재 서서히 접근해 오고 있었다.
"팀장님~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OOO은 해볼 만한 거예요?"
극존칭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최대한 낮은 톤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렇게 팀장이 싫다는 말을 돌려 돌려서 표현하고, 나의 호응을 얻어내고자 십 분 이상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 그래요."
팀장에 대한 비난에는 동의하지 않고, 그저 일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말을 멈췄고,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지지 않고, 다시 풀 죽은 목소리로 '그런데, 그런데' 말을 이어나가려던 악당.
악당은 공공의 적을 만들고, 파벌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고 했다. 그렇게 뒤에서 움직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었다. 악당은 이번에도 나를 같은 편으로 만들어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한다.
악당은 왜 회사에 다닐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곧 이런 생각도 사라졌다.
생계를 위해서 회사에 다니는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재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회사는 월급 받고, '권력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전문직 남편, 강남집만으로는 부족한 재미.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그런 게임을 하면서 4대 보험이 가능한 놀이터는 회사에 있었다.
그녀는 재미를 위해서 회사에 다니지만 나는 생계를 위해서 다닌다. 그것이 그녀와 나의 결정적 차이였다.
다가오는 악당에게... 나는 그녀의 감정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며, 업무 상 대화 외에는 말을 줄일 것임을 결심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과거의 나는 외로웠고, 나만의 원칙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밟지 않는 가시밭길을 스스로 걸어 들어갔던 게 아닐까? 악당은 그렇게 가까이에 있었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새로운 한 해는 입을 닫고, 조용히 할 일만 하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 그래서 악당을 내 옆으로 보내셨다. 조심 또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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