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오고 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내년에는 좋은 사람 만나게 해 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달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사람 보는 안목이 없었을까? 결혼 전 남편의 어머니, 김여사를 만나고 온갖 수모를 당했을 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
그 시절 대학을 나왔고, 현재 강남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본인 아들과 동갑의 여자가 나이가 많아서 싫다고. 해서는 안될 말을 퍼붓었던 흰머리의 할머니였다. 말하는 시간과 비례해서 사람이 설득될 거라는 본인만의 세계관을 가진 여자, 광대뼈가 돌출된 할머니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우는 와중에도 스콘을 나이프로 잘라서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우는 동작과 먹는 동작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상한 풍경이라니.
그땐 몰랐다. 눈물도 가짜라는 것을. 스콘을 맛있게 먹는 것만 진짜였다.
"말리지 마. 늙은이가 울면 불쌍해서, 도와줄 수밖에 없다니까."
사기 사건을 당하고 금감원에 도착해서는 엉엉 우는 엄마를 달래는 아들에게 김여사가 건넨 귓속말이었다. 이럴 때 울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억울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눈물을 조절할 수 있는 김여사의 특기와 잔꾀가 그렇게 발휘되었다.
김여사의 판단과 현실은 달랐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고, 이제 갓 들어온 신입 사원이 나와서 "그냥 나오라고 해서 나와봤어요. 저는 여기 담당도 아니에요."라는 말이 눈물의 결과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어버렸다. 김여사의 분노는 목적지가 사라졌다. 범죄단체와 연루되어 있었고, 경찰은 잡을 생각도 없었다. 형사사건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금감원도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잡을 수 없는 범인 대신 근처에 있는 만만한 사람인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갑자기 분노의 멘트를 장전해서 문자로 폭탄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었다.
만만한 사람에게 대신 화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이번에는 받아주지 않고 폰에 '차단'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김여사가 2월의 추운 저녁에 택시를 타고 집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싸우자는 김여사의 특유의 발작 버튼이 눌린 것이다. 말이 싸우자이지... 김여사 혼자만의 독백쇼를 열리는 것이다.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할머니, 김여사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해결한다.
나는 이번 무대에서 하차했다. 한 번만 더 반복하면(벌써 세 번째 시도였다) 당신 아들과 헤어지겠다는 말을 아들을 통해서 전달했다. 듣던 김여사는 조용히 사라졌다.
김여사는 십 년도 더 전에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중등도의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근처 개인병원에서는 '우울증과 조울증'진단을 받았다. 정신과는 본인의 의지로 간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못 견뎌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어렵게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되지는 못했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말에 공감해 준 몇 마디를 '의사도 인증한 정당한 분노'로 인식하고 치료는 뒷전이었으니까.
그렇게 치료되지 않았던 질환이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켰지만 치매가 아니기에 이 모든 사기 사건은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
김여사가 사기를 당하고 일 년 후에 이번에는 김여사의 아들이 업무 중에 '정산 사고'를 일으켰다. 프리랜서로서 일이 끊겼다가 오랜만에 일이 들어왔는데 정산 실수로 벌지도 못한 돈을 반대로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김여사 반, 내가 반절을 부담해서 사건을 해결했다. 그렇게 김여사는 이번에도 미안함이 없었다. 받는 건 당연했고, 그러면서 더 받고 싶은 김여사였다.
이번에도 비밀로 하고 싶어 했다. 김여사와 아들, 아들의 부인까지만.
반대로 나는 알리고 싶었다. 김여사의 남편분에게. 사실을 말씀드렸고, 김여사의 비밀은 금세 드러났다.
그때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마음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전 재산을 날리고도 멀쩡한 김여사와 반대로 나는 병들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나고, 갑자기 김여사가 했던 말이 떠오르고, 경멸하던 그 눈빛이 보인다.
김여사의 조울증이 나에게 전염된 걸까?
나는 수시로 가슴이 답답하고, 운전하다가도 눈물이 난다. 피아노 레슨을 받다가도 선생님 목소리가 순간 음소거가 되어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있다. 김여사 연락을 받지 않고, 만나지 않는 시간이 반년이 넘었음에도 내 마음의 병은 깊어져 갔다.
당하기만 하고, 제대로 반박 한 번 못해서였을까? 만나서 속 시원히 퍼붓고 싶지만 후환이 두려웠다. 김여사는 사람들 앞에서는 '교사 출신'으로서의 교양을 이야기하지만 실생활에서는 1인 피켓 시위를 하거나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거나 등등의 모든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싸움꾼이었다.
그런 김여사가 집 앞이든 회사 근처든 어디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었다. 통제되지 않는 질환과 사십 대보다 건강한 칠십 대의 체력은 뭐든지 가능했다. 나는 후환이 두려워서 할 말도 못 하고 시들어가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계시지 않았고, 시집살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김여사는 알까?
김여사가 괴롭혔던 말과 행동이 나에게서, 김여사의 아들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가슴에 불덩어리가 올라오면 김여사의 아들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김여사만 모른다.
김여사는 결혼 전과 후에도 한결같이 나와 나의 부모님을 조롱했다. 조롱의 무기는 강남 아파트였다. 누가 들으면 마치 재벌집에 시집온 며느리라도 되는 것처럼 막말을 이어갔다.
결혼할 때도 백원도 보태주지 않았으면서 언젠가 물려줄 집을 근거로 협박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꽤 쓸모가 있어 보이니, '김여사와 한 집에 사는 조건'으로 물려줄 계획을 세웠다.
한 번에 아파트 두 채를 날려 버렸다. 이제는 돈도 집도 사라졌다. 협박이 멈출 줄 알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이럴 때 돕는 게, 사람의 도리지."
집을 날리고, 쫓기듯 구한 전셋집 이사를 하던 날에 나를 부른 이유는 바쁜 날 돕는 게 사람의 도리라는 것이다. 김여사는 교회에서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고, 누가 묻기라도 하면 못 들은 척하면서 엉뚱한 말을 했다.
그런 김여사가 망하고 나니 '사람의 도리'를 찾고 있었다. 김여사가 칠십 평생을 모르고 살던 사람의 도리를 왜 나에게 찾는 걸까?
내 팔자 내가 꼬았다는 벌이... 김여사와 그 아들을 만난 것일까?
교통사고는 참을만했는데 내가 만든 인연으로 생긴 사고는 참기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분노로 한 해를 마감했다. 그리고 분노의 시간에 기한을 만들었다.
2026년 6월 30일.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채무와 관련된 계약서에 공증을 받았다. 헤어질 결심을 하는 데 이년이 흘렀고, 또 헤어지기 전 과정에 6개월이라는 시한부 조건을 걸었다.
혼자 사는 것보다 둘이 사는 게 더 나을 거라는 믿음에서 결혼을 했다. 하지만 둘이 되고 보니, 둘보다 혼자가 낫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이별을 결심했다. 나이와 반비례해서 세상물정에 어두웠고, 사람에 대해서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나는 인정한다. 짧은 안목이 내 인생을 뒤틀었음을. 그리고 그 과정도 결과도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눈물 속에 살았던 한 해가 간다. 다가올 한 해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힘을 내 보려 한다. 하수구 빠진 사람도, 구할 사람도 온전히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