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 불러온 행운

김민식, '매일 아침 써봤니?'

by 그럼에도

프롤로그 中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면 지난 몇 년간 제 삶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겠지요. 매일 아침 글을 한 편씩 쓰면서,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되새겼어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그 순간 가장 쓰고 싶은 글을 그냥 썼습니다. 게임이나 TV 시청 혹은 회사 업무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생산적 취미 활동으로 일과를 시작했어요. 그 덕분에 저는 패배감에 사로잡히기보다 매일 정신 승리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 나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시작하는 멋진 사람이야!' 그런 점에서 블로그는 제게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어요.


이 책을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글쓰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글이었다. 김민식 PD님 영상을 우연히 봤다가 책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고, 읽었다. 매일 글을 쓰다니? 글이란 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쓰는 활동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MBC 파업과 함께 찾아온 시련으로 시작한 글쓰기. 그땐 아픔을 잊기 위해 썼지만 쓰다 보니 즐거움에 푹 빠진 글쓰기 예찬가의 글이었다.


재밌게도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마음이 많이 아팠던 시기였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배신(?)과 이용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 일기라는 것을 썼다. 말이 일기지, 거의 화풀이 같은 하소연이었다. 예전의 나는 화가 나거나 우울하면 친구나 친한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습관과 패턴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내 주변은 육아에 바쁜 사람들과 그리고 이렇게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 철없음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거기다 대화에 한계가 있었다. 우울한 결과 말고도 그 일의 원인과 과정까지 세세하게 설명하다 보면, 말하는 나도 대화 중간엔 지치고, 듣는 이는 얼마나 지루할까? 예전처럼 친구들에게 세세하게 말하지 않는 건 비밀 같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말하기에 너무 길어서이다. 그리고 듣는 이까지 우울감이 전염될 수 있으니깐.


그래서 처음으로 마음속의 대화를 종이에 적었다. 그때쯤 우연히 이 책을 읽었고 쓴다는 것의 의미를 느끼게 되었다. 저자가 블로그에 적는 것과 다르게 나는 일기 쓰기에 푹 빠져들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 내용이 화가 가득 찬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내용 위주여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쓰다 보니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성급했을까? 왜 나의 직감을 무시했을까? 와 같이 결국은 고민의 결론을 지을 수 있었다.


올해 8월에 시작한 브런치도 그 일기의 연장선으로 오게 되었다. 알고 보면 나에게 글쓰기란 '배신이 불러온 행운'이었다. 저자가 파업의 아픔에서 시작한 블로그 글 쓰기처럼 말이다. 물론 파업과 같은 생업의 아픔과 나의 감정 비교가 무리는 있지만.


내가 느끼는 글쓰기는 생명력 강한 생물체 같다. 글쓰기의 원동력이 자기 계발이 아닌 '결핍과 불안'에서 시작한 자립이라는 점에서 글은 아스팔트 틈새에서 싹이 자라난 풀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일어섰고 그리고 성장했다.


글로써 어떤 걸 이루어야겠다는 다짐이나 각오는 없다. 글을 쓰다 보니 내 마음이 분명해짐이 좋았고, 자주 쓰다 보니 쓰고 싶은 말이 더 많아졌고, 재밌어졌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시작한 글쓰기.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는 관계로 엉성한 표현이 많아서, 요샌 글쓰기에 관련한 책을 E북 서재에 몇 권을 담아 놓았다. 나의 생각을 문자로 더 정확하게, 더 느낌 있게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재밌을 거 같다^^


- 한글날 전날, 세종대왕님의 지지자 -



그림 https://www.pinterest.co.kr/pin/72979431460259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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