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마음을 품은 집’
마음을 품은 집, 책 내용 중
건축은 미술도 디자인도 아닌 인간의 모든 것을 담은 그릇이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멋지고, 근사한 건축이 좋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집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건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은 인생 그 자체였다.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슬프기 짝이 없는 사연도 있었다. 오욕칠정이 스며든 건축은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장과도 같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기쁨이 깃든 건물도, 분노가 담긴 건물도, 겉으로는 이상해 보였던 건물도 모두 아름답게 보였다.
(들어가는 말 중)
(전자책 31%)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스토리텔링 박물관’을 구상했다.
대부분 박물관은 예외 없이 입구를 지나 1층을 보고 2층을 보는 순서를 따르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동선을 제시했다. 심사위원들이 이 두 사람의 아이디어를 당선작으로 뽑은 것도 동선을 새롭게 짜서 풀어내는 서사 구조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문을 연 새 박물관은 건물 정면이 아닌 옆구리 쪽으로 난 좁은 쪽문 같은 입구로 들어가게 된다. 입구로 들어서면 어둡고 좁아 마치 동굴 입구 같은 로비가 나타난다. 그리고 집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안내자는 관람객을 로비에 있는 또 다른 쪽문으로 이끈다. 문을 열면 건물과 뒷집 사이, 어둡고 좁고 긴 틈새 같은 공간이 먼저 등장하면서 이 건물이 보여주는 이야기 시작된다.
시멘트 담벼락에는 검은 페인트로 그린 소녀의 실루엣이 이어지고, 마주 보는 건물 외벽엔 할머니들의 얼굴을 그대로 본떠 만든 부조들이 돌출되어 있다.
중략
허름하고 음습한 지하실 속 작은 방에는 만들다 말고 놓아둔 폐자재처럼 보이는 설치 미술 작품이 당시 할머니 처지를 암시한다.
중략
그리고 더욱 강렬한 계단이 그다음 차례로 등장한다. 건물 벽 표면을 걷어낸 벽돌 구조를 드러낸 계단은 이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설치미술품 역할을 한다. 기존 건물의 구조 부분과 새로 증축한 부분이 만나는 계단은 시간의 중첩과 연속을 보여주면서 아픈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는 이 건물의 의미를 표현한다.
언젠가는 단독 주택의 집을 짓겠노라는 꿈이 있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책에 대한 인상이 강렬해서, 다시 전자책으로 구매하고 소장한 책이다. 집 짓기에 대한 현실 조언을 기대하고 펼친 책에는 전혀 다른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책을 읽고 마음에 오래 담은 이유는 독자인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마치 성형수술 전후 사진처럼 읽기 전에 가졌던 생각과 읽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 집 이외에는 관심이 없던 건축과 건축가에 대한 생각과 관심이 생겼다. 얼마 전 들렸던 ‘통도사’에서도 건축 구석구석, 주춧돌에도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여기엔 어떤 의미가 담길 걸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과 의미를 알아내려는 새로운 시야는 이 책이 준 선물이었다.
이 책은 ‘희로애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주제에 맞는 건축과 건축가, 그리고 건축의 설계가 의미하는,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모두 의미가 있지만 난 그중에서도 있는 줄도 몰랐던 박물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박물관은 건축 이전부터 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박물관을 짓기엔 너무 적은 금액으로 짓는 과정에도 아픔이 길고 많았다. 적은 비용의 한계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박물관 이름만큼이나 아픈 이야기를 사람들이 걷는 동선을 따라서 들려준다.
박물관 홈페이지에도 이 책의 내용이 실렸다면, 동선의 의미를 조금 더 길게 적어주셨다면, 더 많은 공감이 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을 남기며, 올해 연말 여행의 코스로 추가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