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앰 히스레저(I Am Heath Ledger, 2017)
나에겐 이따금 이상한 악취미가 하나 있다. 누가 들으면 좀 기괴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없거나'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남겨둔 작품들을 다소 편집증적으로 향유하는 것이다. 조금 더 살았더라면 그들이 남긴 노래나 영화나 작품이 더 많은 이들을 치유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었을 거라 기대가 되는 사람들. 그런데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아쉬움'과 '야속함'을 동시에 던져주고 간 이들. 마지막 모습이 '청춘'이었고, 영원히 늙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기리고, 그리워 한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러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예술가, 영화배우, 작가 등을 나열해보니 신기하게도 다 일찍이 돌아가신 분들이었다.(물론 여전히 살아서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분들.. 이소라, 윤상,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등 도 있지만... 오래오래 사세요.)
"이상(소설가, 26세), 유재하(뮤지션, 25세), 김광석(뮤지션, 31세), 정은임(아나운서, 35세),
이은주(배우, 24세), 커트코베인(배우, 27세), 제임스딘(배우, 24세), 히스레저(배우, 28세)"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직업과 사망나이를 쭈욱 리스트업 해보니, 정말 아까운 청춘들이었다는 생각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든,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든 여기 열거된 이들은 시대를 대표하는 청춘이거나,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로하는 사람들이었다. 재능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었던 사람들. 그래서 이들을 보면서 대중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의 청춘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영화 '아이 앰 히스레저(I Am Heath Ledger, 2017)'는 나랑 비슷한 취미 또는 취향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거 같다. 청춘의 모습으로 영원히 늙지 않는 떠나간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오, 나이를 먹어가는 나와는 달리 영원히 늙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가슴에 품고 산다면 더욱 추천한다. 히스레저 덕후가 아니어도 좋지만 그의 대표작 2개 정돈 알고 가는게 좋을 수도 있다.
누가 캐스팅 되었더라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잭 니콜슨 이후 최고 악당으로 분한 '절대 악 조커'와 '게이 카우보이'를 연기한 히스레저는 이 작품 등을 통해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배우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 '아이 앰 히스레저(I Am Heath Ledger, 2017)'는 어린시절 호주 퍼스(perth)에서 나고 자라 헐리우드의 성공한 배우가 되기까지 짧은 28년간의 그의 삶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연기가 하고싶어 고향인 호주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을 시작한 10대 후반의 청년은 사망하기 직전까지, 28년동안 19개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배우 뿐 아니라 영상문법에 대한 관심이 많아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기도 했으며,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녔던 고인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은 기억한다. 감독의 카메라는 그와 오랜시간을 함께 지내고,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히스’와의 추억을 통해서 관객에게 인간 '히스레저의 삶'을 엿볼 기회를 준다. 어린시절 호주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구들, 매니저 감독 및 영화관계자들, 셀러브리티,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감독의 앵글 안으로 들어온다. 누군가의 오랜 친구, 아들, 오빠, 남편, 애인, 그리고 아빠. 화려한 서포트라이트를 즐겼을 법한 헐리우트 스타이자 영화배우. 그의 죽음 이후 관객은 영화스크린에서 보였던 '히스레저'의 다양한 모습을 이 영화를 통해 새로이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떠나간 청춘이 더욱 야속하고 그리운 존재가 된다.
영화촬영 도중 뉴욕 맨하탄 아파트에서 약물오복용으로 사망한 그의 짧았던 삶에 얽힌 루머나, 브로크백 마운틴에 함께 출연한 여배우 '미셸윌리엄스'와의 이혼, 나오미캠벨 등 매력적인 여자들과의 염문과 같은 가십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다. 혹시 이런 자극적인 이슈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면, 조금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대중들은 인간이자 예술가 였던 '히스레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한 때 우리 모두의 순간이기도 했던 '청춘'에 대해 떠올린다. 꿈 많았던 청춘, 실패를 맛보았던 젊은 날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물론 그것이 지금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고.
청춘은 때론 쓰고 가혹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만큼 매혹적이고 달콤한 맛이 있다. 그 청춘이 지나가면 '세상살이 별거없어' '다 그러려니 하고 넘겨'하며 삶에 조금은 노련해지긴 한다고 하던데...(어른들이 말하길). 청춘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인생의 맛이 그리 쓰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이 맛인지 저 맛인지' 잘 모를 맛이라고 한다. 심심하고 지난해보인다. 물론 나는 '위대한 요절자' 덕후이지만, '아이 앰 히스레저(I Am Heath Ledger, 2017)'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브런치 무비패스 티켓창구에서 나눠준 '히스레저가 청춘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긴 리플렛을 읽어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른 나이에 자신의 꿈을 이루고, 열정적인 삶을 힘껏 살아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위대한 이들의 열정과 용기에 대한 연모를 품는 것도 좋지만, 지금 이렇게 지난하고 긴 레이스를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꽤나 큰, 어쩌면 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도 박수쳐주지 않고, 넘어져도 일으켜주지 않고, 그 끝이 어디쯤 될지도 가늠할 수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을 수많은 청춘과, 그런 청춘의 시기를 지나고도 여전히 계속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격려는 더욱 필요하다.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청춘은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