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아이의 거울일까. 아니면 아이가 어른의 거울일까
'가슴 따뜻해 지는 가족영화'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라 시사회를 다녀오고 일주일을 많이 넘겨(ㅜㅜ) 리뷰를 적게 된다.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까, 무슨 이야기를, 어떤 감정을 공유해야 할까 생각만 하고 좀처럼 글로 옮겨내기가 어려웠다. 보는내내 많이 울었고, 그 이후에도 많이 생각하면서 곱씹게 되는 영화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이 영화가 선천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 '어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 일까? 나는 오히려 '어기'를 통해 주변 인물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안에서 넓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는 더 깊은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나 뿐 아니라 주변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영화속에서 어기를 통해 사람들은 성장한다. 친구, 누나, 누나의 친구들, 어기의 부모까지도. 이 아이는 모든이들의 거울임에 틀림없다.
10살 남짓의 소년, 소녀들의 우정이야기가 영화의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래집단에서의 패거리 문화, 그 와중에 일어나는 소외, 소외를 극복하고 우정을 찾아가는 이야기. 기존 영화에서 꽤 빈번하게 다뤄졌던 아이들의 우정, 친구의 의미 등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보여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애초에 아이들은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것들이 없었다. 장애를 불편함으로 여기고, 나와 다름으로, 부족함으로 여겼던 것은 바로 아이들이 아닌 '어른'이기 때문이다. 핵가족화 되고, 부모가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부모에게 받아야 할 밥상머리 교육(어쩌면 놀이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이게 가장 마음에 걸리고, 지금 닥치진 않았지만 내게 현실로 주어졌을 때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조금은 막막한 생각을 했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픈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까이서 본 경험이 있다. 대학 때 교환학생을 갔을 때였는데, 런던교외의 장애인 복지시설이었다. 나는 봉사활동으로 한 달여간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돌봤다. 우리나라 보다 복지가 훨씬 잘 되어 있는 선진국(영국)에서의 그들은 위한 시스템은 체계적이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날서있고, 까칠하기로는 세상 두번째라고 해도 서러울 영국인들이지만 런던 중심가를 휠체어를 끌고 활보해도 그 누구도 앞 길을 막아서지 않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먼저 양보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24시간 내내 엄마보다 덩치가 훨씬 커버린 몸이 불편한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눈물을 지켜보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20대 중반 무렵 무겁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모의 무게, 어른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은 입장에서(어쩌면 영원히 모를지도) 왜 우리는 결혼적령기에 이르기까지, 아니면 결혼을 하고서도,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도 '좋은 부모'에 대해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좋은 부모의 모델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겪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나도 그냥 되는대로 살아보겠다,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 같은 이야기는 너무 삶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아닐지. 매뉴얼대로 키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 것이 '자식농사'라 어른들이 말하긴 하지만 말이다.
모든 일에도 다 준비가 필요하듯이(난 준비하느라 시작을 못하는 타입이지만 ㅜㅜ) 가족을 만드는 일, 부모가 되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 이 모든 일에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만 많아 마음만 분주해지는 요즘, 한 인간을 이 세상에 내려놓는 일이 어떤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