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의 역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을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만들어 진다. 불행하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승자의 기록으로 세상사를 바라보고, 침략자의 프레임으로 미래를 점친다. 어떤 의도성이나 계획된 의지가 아니라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들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수긍하다보면, 즉 ‘모범시민’으로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무지한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
선조의 모험정신과 희생으로 오늘 날의 미국땅에서 기회와 자유를 누리는 이들에게 분명 개척자들은 미국이란 나라의 뿌리이자 자긍심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살 터전을 잃고 가족을 잃어버린 원주민들에게 미국 서부개척 시대는 그저 복수와 증오만을 갖게 하는 피의 역사일 뿐이겠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전쟁영웅이자 대위역할에 충분히 매력적인 배우 ‘크리스찬베일’은 제 옷을 입은 듯 보였다. 그를 중심으로 모든 배우가 묵직한 연기를 충실히 해냈다. 황량한 사막과 초원이 펼쳐지고 그 위로 말을 타고 거니는 장면, 석양이 비추는 장면 등 영화 곳곳에서 충분한 영상미가 느껴졌다.
디즈니 영화에서 조차 미 제국주의를 뿜뿜하길 좋아하는 할리우드를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분명 진 일보했다. 자기반성이있고, 화해와 용서까지 버무려졌다. 하지만 화해와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언급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역사로 기억될 지금 이순간에 나는 과연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방관자인가. 묵직한 메시지였으나 여전히 머리속은 복잡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