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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Mar 24. 2018

[책리뷰]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회사가 싫어 집으로 도망친 여자의 리얼 주부 일기


일하는 여자라면 한번쯤 '취집'이나 '전업'을 꿈꾼다.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 때, 여자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소외될 때, 낡아지기만 하고 도무지 깊어지지 않을 때. 그럴 때 이 책이 마음을 다독이거나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쓸모 있는 참고서가 되었으면 한다.(프롤로그 中)



 이 책의 다소 ‘도발적인’ 제목에 눈길이 갔다. 여태껏 일하는 여성의 애환, 커리어를 통한 성공에 관한 책은 자기계발 코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이야기는 한국사회에서 쉽사리 출간서적으로 찾아보긴 힘들다. 포털사이트 인터넷 카페의 ‘내남편이야기’나 그런 메뉴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진 책을 보시더니 지나가던 팀장님이 한 말씀하셨다.

 “요새도 저런 간 큰 남자가 있어? 맞아죽을 소리네. 저러다 큰일난다.”

비교적 양성평등이 보장된 우리 회사 남성이라 이렇게 얘기했을지도 모른다.(일가정양립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단다. 왜지?) 아니면 아직 미혼이지만 혹시라도 만에하나 언젠간, 전업주부가 될지도 모르는  내가 듣기에 좋으라고 거들었을 수도 있고.


 맞다. 요즘시대에 이렇게 ‘맞아죽을’ 소리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령 자기 아내를 논다고 여기더라도 아내를 상대로 직접적으로 말하는 일은 드물다. 책을 읽어보니 실상 저자의 남편은 아내의 꿈을 지지하고, 훌륭하고 착한 인품까지 지닌 분이었다.(제목에 낚였다.) 작가는 아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대한민국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전업주부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그 잘못된 프레임으로 부터 나오는 부수적인 문제들을 우리가 너무 얕잡아 생각하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건 아닐까? 이건 한 개인, 가정의 문제라기 보다 사회문제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성별, 나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체득된 전업주부에 대한 인식은 하루아침에 쉽게 변하기 힘들것이다. 지금은 어쩌면 과도기 일지도 모른다. 책은 꼭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길 꿈꾸는 전업주부만을 일독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전업주부를 둔 남편은 물론 미혼남성, 혼인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읽고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언급했듯이 미혼인 나는 ‘낡아지기만 하고 도무지 깊어 지지 않을 때’라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아마 다 각자의 번뇌와 고민, 불안으로 이 책을 집어들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전업주부든 일하는 주부든 그들 모두는 주부이기 전에 인간 자체로 오롯이 하나의 존재였다. 누군가의 딸, 누나, 언니였을 것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해내는 직업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의 애인에서 아내로, 그리고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확장된 자아가 본래의 나를 잡아먹기보다 삶 자체를 더 풍요롭게 살찌워주었으면 좋을텐데. 그게 쉽지 않는 상황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종국에  책은 전업주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전업주부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거나 웅크리고 있을 당사자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책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그 뻔한 경구가 귓가에 맴돈다.


얼마 전 남자인 회사동기가 육아휴직을 냈다. 복직하는 아내대신 이번엔 가사와 양육을 본인이 맡기로 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육아나 교육분야 관심이 많아 팔로우하던 소아정신과 의사인 '서천석' 선생님의 책과 SNS를 추천해 주었다. 선생님은 양육에서 아버지의 역할, 남편의 자리를 강조하는 걸로 유명하다. 오지랖일까 싶었는데 다행히 동기도 이를 반겼다. 알게모르게 내 주변에서도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

 

이 책의 출간과 인기 만으로도 세상은 느리지만 조금 씩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전업주부로서의 고충을 다룬 남성의 이야기도 서점에서 보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은 좋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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