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뉴욕, 길고도 짧았던 2주간의 여름휴가 이야기
올해도 벌써 3개월 남은 시점에 한해를 미리 정리해보려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으로 지나온 시간들을 기록하는 요즘시대에 스마트폰은 내 모든 발자취가 담긴 일기장 같은 존재다.
"올해도 아무것도 안하고 지나갔어."
습관적으로 연말이 되면 올해도 시간만 죽이고 소득없이 헛탕만 쳤다고 자책하지만, 알고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던 다사다난한 날들이었다. 아마도 별거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말했던 이유는 단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2018년 겨울즈음부터 올해 4월까지 꼬박 업무로 시달린 나는 홧김에, 어쩌면 아주 계획적으로 생애 첫 미국여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6월말에 다소 이른 여름휴가를 떠나자. 10일 휴가에 주말을 붙이면 총 14일간 회사를 떠나 여행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강행할 수 밖에 없도록 일찌감치 항공권을 구입했다. 인천-뉴욕-포틀랜드-시애틀-인천 여정에 따라 국내 항공사 직행 티켓을 예매했고, 뉴욕에서 포틀랜드로 이동할 수 있도록 미국 내 항공권도 예매했다.
내게 세계의 수도라 생각되는 뉴욕은 거대하고, 복잡하고, 분주한 도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뉴욕으로 가야지."라는 지인의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던 터라 항상 '언제 죽기전에 한번은 가봐야지.' 라고 생각하게 만든 도시이기도 하다. 6월 말의 뉴욕은 예상대로 찌는듯한 폭염과 시끄러운 도시소음, 교통체증과 엄청난 인파가 섞인 거대도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명색이 여름휴가인데 너무 챌린징한 여행일정을 짠 건 아닌지 살짝 후회감이 들기도 했다. 적어도 센트럴파크에 들르기 까지는 말이다.
첫 날 도착하자 마자 숙소에 입성하였으나, 성소수자의날(LGBT)과 맞물린 탓인지 호텔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서 한인텔을 통해 예약을 했다. 동생과 내가 독방을 쓸 수 있고, 거실과 화장실은 공유하는 구조였는데 솔직히 깨끗하거나 쾌적한 맛은 없어서 그냥 호텔에서 잘 걸 그랬나 후회는 들었다. 사실 가격도 몇 불 차이나지 않았는데 둘다 경험이 없는 도시였기에 한인텔을 이용했건만. 펜스테이션에 위치했다는 교통편이성을 제외하고는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뉴욕은 높은 고층빌딩이 많은 업무지구에 작게 공원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도착 첫 날엔 센트럴 파크에 가기가 어려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살겸 숙소에서 슬슬 걸어서 브라이언파크에 도착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그늘에 앉아있는 직장인들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날에는 각자의 친구를 만나러 브루클린(Brooklyn)으로 출동했다.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학교 선배 언니를 만나 점심을 먹기위해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 군데군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날씨가 매우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대낮부터 땡볕아래 열심히 운동하는 뉴욕의 생활스포츠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맨해튼교(Manhattan Bridge) 앞에서 선배언니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달리기 하는 남자들의 사진이 찍혔다.
솔직히 이 때부터 너무 더위를 먹은터라, 뉴욕일정을 너무 길게 잡았나 후회가 들기 시작했지만, 그 마음은 곧 센트럴파크 방문 후 사라지게 되었다.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은 센트럴파크에서 충분히 도시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원 안에서 바라보는 고층 건물들은 오히려 풍경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무의 크기도 거대했고, 새소리 물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렸으며 무엇보다도 자연이 만들어 낸 에어컨디셔닝 시스템이 좋았던 것 같다.
운동 마니아였던 나와 동생은 폭염을 피해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서 1일 1센트럴파크를 실천하기로 했다. 첫 날 해가 뜨기전에 찾은 센트럴 파크 호수 주변에서 러닝을 시작했다. 간간히 러닝을 하였던 나와 달리 동생은 달리는 것을 조금 버거워 했지만, 이 때가 계기가 되어서 지금은 러닝마니아가 되어 있다. 달리는 재미는 아주 조금씩, 서서히 체감되는 것 같다.
아침에 한번 달리러 오고, 낮 일정을 소화할 때는 근처에 오면 반드시 센트럴파크를 들렀다. 공원자체가 너무 넓어서 인지 매일 갔음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 다 보기는 힘들었지만,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나이키 러닝앱을 켜고 센트럴파크 한바퀴를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 매일 살찌는 음식과 술을 먹었지만 여행중에도 간간히 운동을 해서인지 생각보다 몸무게가 많이 늘진 않았다. 비만인구가 많을 것으로 지레짐작했던 미국이었지만 의외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종일 쉴새없이 아주 빠른 속도로 공원 또는 길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나처럼 딱히 쇼핑에도 큰 흥미가 없고, 운동을 좋아하고,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할 뉴욕 명소라고 생각한다. 덤으로 운동에 대한 동기부여도 받을 수 있다. 다음 번 뉴욕여행에는 반드시 센트럴파크 근처 숙소를 예약해서 1일 1러닝을 실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