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만 잘 쓰면 돼. 논문 몇 개 쓸 거야? 입학과 동시에 나를 괴롭힌 그 2음절의 단어. '논문'
논문의 정의를 나무 위키에서 찾아보았다.
논문이란 어떤 것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정리하는 글이다. 문제는 이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샐러던트는 논문을 체계적으로 작성하는 것에 제약 상황이 참 많다. 직장에서 빨리 나오느라 눈치를 보고, 학교에서는 나이 많고 굼떠서 혹은 돈을 딴 주머니로 벌고 있으니 연구실에 기여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 한 언더독(underdog)으로서 여러모로 이중고다.
"그러게 뭐하러 대학원을 갔니?"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학부 다닐 때, 딱히 학구열이 높지도 않았던 걸 아는 이들은 쉽게 나의 마음을 읽어내기도 했다.
"회사에서 지원금 내준다며? 안 갈 이유가 없잖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이 나이에 쉽게 석사과정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정말 대학원을 간 이유는..... 써 내려가면 약 10가지 정도로 요약할 순 있을 거 같다. 그만큼 단 한 가지의 이유는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2년 하고도 6개월간 나를 내내 괴롭힌 '논문'이라는 것이 내가 대학원을 간 이유이기도 하다. 이건 과장이 좀 섞였고, 사실 3학기 차부터 논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석사 지망 1순위는 논문을 써야 졸업을 시켜주는 일반대학원 과정이었다. 거기서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한다면, 직장인 만을 대상으로 하는 MBA나 기타 야간 대학원을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학위를 진행해나가면서 그냥 직장인들 가는 대학원이나 갈 것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교수 테크를 타는 사람들이 있는 일반대학원에 왔나 후회를 하긴 했다.
변태도 아니고 왜 굳이 논문 쓰는 대학원에 갔느냐 묻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변태일 수도 있겠다. 대학교 4년 동안 사실 학벌이라는 간판을 딴 것 외에 뭔가 나에게 남겨진 게 없다는 허탈감을 느꼈었다. 그 학벌은 돈벌이 때문에 관심이 없는 여러 회사에 지원하는 이력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재직하는 직장에 들어간 것도 어찌 보면 그 덕일 수도.
나의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닥쳐오는 리포트나 시험에 항상 열심히 하긴 했었는데, 지나고 나면 그냥 GPA만 남고 정말 내 안에 남겨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대학시절 언론사 준비를 한답시고 써 내려간 작문, 논술 그런 글들이 나의 삶을 지탱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30 중반이 넘은 나이에 나는 욕심을 좀 부려봤다. "제 전공이 00이고요, 어떤 주제로 000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난 이런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정말 관심 있는 게 하나도 없어졌다. 회사 일은 물론이거니와, 드라마도 아이돌도 더 이상 열렬히 좋아하지 않는다. 남보다 특히 잘 아는 것도 없다. 바로 이것이 학부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된 정말 많은 이유 중 하나다. 내가 공부한 것, 관심 있는 것에 대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설문조사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에도 논문을 쓸 때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문헌고찰과 통계분석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난관이었던 것 같다. 결국 논문이란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체계적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글이기에, 어쩌면 '답정너'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그러니 그 방향으로 내 연구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체계적인 글을 위해선 내가 생각한 주제와 관련해서 그 간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해온 결과를 총체적으로 소화하고 기술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 그 정성을 문헌고찰에 얼마나 쏟았는지가 즉 퀄리티이다. 사실상 문헌고찰이 다 된 이후에, 논문 주제가 정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사일을 병행하고 있었던 나는, 문헌고찰을 하던 와중에 시간이 촉박하여, 주제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다 회사 때문이라곤 말 못 하겠다. 회사로 스트레스를 받은 나 때문일 수도 있으니.
아무리 그래도 회사원은 시간이 너무 없다. 문헌고찰하려고 할 때마다 일로 지쳐 피곤한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늘어지기 일쑤고, 그러다 보면 계속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간다. 퇴근 후 각 잡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논문을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 눈도 침침하고, 특히 모니터로 보는 것은 왜 이리 익숙지 않은지. 뭣보다 애매한 완벽주의자 같은 나 같은 사람은 매번 논문에서 나온 내용들을 기록하긴 하는데도, 며칠 뒤 다른 자료를 찾아볼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나와서 어떤 논지로 논문을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해졌다.
입학과 동시에 전공분야 논문을 모두 샅샅이 뒤져서 보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전혀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국내 논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국 논문은 영어로 읽고, 이를 한국어로 번역해야 하는 상황으로 읽어야 하다 보니 이게 대학원 공부인지 토플 문제 푸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많은 양의 글을 읽고, 이를 해석하고 자신의 글과 말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대학원생의 업인 것 같다. 물론 연구실 행정업무는 예외로 하고.
'다독, 다작, 다상량'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웬만하면 1학기 입학하면서부터 실천하시라고 추천한다. 나는 그렇게 못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아마 못하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