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시작은 영화로부터
오랜기간 '언젠가' '기회가 되면'의 쿠션 언어를 붙이고 말았던, 발레를 시작한지 딱 6개월째다.
모든 관심의 시작은 책, 영화에서부터 시작되는 사람이었던지라 먹고 살다보니 바빠져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습관을 이기지 못하고 발레관련 영화를 찾아봤다. 블랙스완이나 빌리엘리어트 같은 고전은 이미 여러 번 봤어서 패스.
그러다 마침 개봉하는 영화가 있어 기분좋게 예매를 했다. 한창 시즌이라 바빴던 1월 중순, 영화 개봉일에 맞춰서 프랑스 영화 '라이즈'를 관람했다. (회사에는 병원에 간다고 했다. 내 휴가 내가 쓰는건데, 그 정도 거짓말은 괜찮겠지).
촉망받는 발레리나출신 여주가 부상으로 발레를 멈추고 그만두게 되면서, 시작되는 영화라..솔직히 기대한 것 만큼 발레장면이 많이 나오진 않았는데, 역시나 성장영화류를 좋아하는 나에겐 그마저도 의미있고 재밌었던 영화로 기억된다.
여주인공 '엘리즈'는 공연당일 무대 뒷편에서 무용수인 자기 남친이 다른 여자 발레리나와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날 실수로 입은 부상으로 일과 사랑 모두를 잃게 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그리고 발레는 아니지만 현대무용을 하는 크루들과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발레 하나만 보고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에서 또 다른 일의 의미와 인생, 그리고 사람과, 사랑을 다시 찾게 된다.
우리나라 영화로 치면 '리틀포레스트'가 생각나기도 했고, 미국 영화였던 '프란시스 하'도 생각났다. 프란시스 하도 10년전에 본 거라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는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 겠다 생각함.
몸은 아직 초급, 입문자 수준이지만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그래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하게 되면서, 그 전까지는 그냥 '발레영화'군. 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오감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평소 자주 듣지는 않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분주하고 번잡한 기분들을 좀 정리하는 데에도 퇴근 후 발레스튜디오를 가서 음악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특급 노예 포지션이라 시즌에는 휴가내는 걸 생각도 못하는데, 이렇게 뻔뻔하게 오전반차를 내고 영화를 봤던 것도 '발레'가 나에게 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평일 오전시간에 나를 제외하고 관람객이 딱 2명 있었는데, 전부 여성들 ㅎㅎ 내 또래 남짓의 취미 발레 입문자들이 아닐까?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상영관을 유유히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