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8월 1일 (목)
드레스덴으로 떠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기차 시간에 맞춰 나갔다. 호텔 로비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였다. 우리 네 명과 우리의 짐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택시를. 잠시 후 택시가 도착하였고 그 택시를 타고 베를린 중앙역으로 갔다. 아침 출근시간임에도 길이 많이 막히진 않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택시에서 내려 역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소진언니의 다급한 외침
"내 가방! 가방이 없어."
헉, 이건 무슨 날벼락인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지갑, 여권 등 중요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보조가방이 없다는 것이다. 택시에도 분명히 없었던 것 같단다. 그렇다면 호텔에 두고 왔다는 말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멘붕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기차를 놓치더라도 가방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오늘 안에 드레스덴 가기만 하면 된다. 우선 호텔 로비에 전화를 해서 가방이 있나 물어보려 했지만 호텔 대표번호인지 자동응답으로 연결되어 로비 직원과 통화를 할 수 없었다. 호텔로 다시 가는 수밖에 없다. 네 명이 다 같이 움직이면 번거롭다. 지현언니와 윤지는 우리 캐리어와 함께 역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소진언니와 나만 역 앞에 있는 택시를 타고 다시 호텔로 갔다. 내가 카드로 택시비를 계산하는 동안 소진언니는 호텔로 뛰어 들어가 가방을 찾아 나왔다. 다행이다. 가방이 로비 앞 소파 구석에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택시기사님이 카드계산이 서툴러 빨리 계산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좋았다. 그 택시를 그대로 타고 다시 역으로 갔다.
베를린 중앙역 티켓오피스를 다시 찾았다. 우리의 드레스덴행 티켓은 스페셜 프로모션 상품이라 교환, 환불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새로 발권하는 수밖에 없다. 아~ 아깝다. 여행사에서 1등석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줬는데 못 타다니. 새 티켓을 사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아까 그 직원이 다시 우리에게 와서 원래는 교환 안 되는데 오늘만 특별히 다음 기차로 교환해 주겠다고 하였다. 베를린에서 천사를 만났다. 땡큐를 연발하고 기차를 타러 갔다.
변경한 드레스덴행 기차는 10분 뒤 출발이라 얼른 플랫폼으로 갔다. 연이어 기차가 들어왔고 몇 번 객차인지 확인도 못하고 그냥 올랐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그냥 좌석번호만 보고 앉았다. 그런데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난다. 그들 자리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우리 객차는 앞쪽 1등석이었는데 우리는 가장 뒤쪽으로 탔다. 우리 자리도 아닌데 그냥 앉아 갔다. 가던 중 승무원이 티켓을 확인하였는데 자리를 옮기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드레스덴까지 갔다.
두 시간가량 지나 드레스덴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역에서 우리 호텔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드레스덴 젠트럼까지는 걸어서 가면 된다. 출구 쪽에 승무원이 있어 구글지도 추천경로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가면 되냐 물어보니 역을 나가 오른쪽 메인 스트리트로 가는 것이 더 좋다고 친절하게 말하였다. 독일 사람 하면 왠지 무뚝뚝하고 불친절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만난 독일 사람들은 영어도 잘하고 아주 친절하였다. 깨끗한 도시에 친절한 시민, 독일에 대한 인상도 아주 좋아졌다. 승무원이 추천한 길은 프라하 거리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이곳까지 구시가지라 하였지만 지금은 근대식 건물과 아파트로 채워져 신시가지에 가깝다. 거리 자체가 여행지라 그 길로 가길 잘 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근처 수제 햄버거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큐알코드를 찍어 주문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해 보지 않은 방식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소진언니의 호텔 에피소드를 들었다. 방을 배정받아 갔는데 냉방이 안 되더란다. 로비에 가서 에어컨 작동이 안 되니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는데 영어는 짧고 손짓발짓 설명하였더니 "AC No working" 하면서 찰떡같이 알아듣더란다.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걸 어렵게 설명한 자신이 한심하였다면서 바뀐 방은 냉방이 아주 잘 된단다. 아침에 가방 소동으로 미안한지 나에게 부탁하지 않고 직접 문제해결에 나선 모양이다. 그래, 되든 안되든 직접 부딪혀 보는 거지 뭐. 소진언니는 좋은 경험하고 있다.
수제버거 세트는 양이 엄청나게 많다. 내가 다 먹기는 힘들어 윤지에게 반정도 잘라 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윤지는 자기가 주문한 세트메뉴와 내가 준 버거 그리고 자기 엄마가 준 샐러드까지 다 먹었다. 이렇게 많이 먹는 아이가 그동안 소소한 간식 같은 점심을 먹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윤지를 위해서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 슬슬 출발해 볼까? 소진언니는 화장실 가고 싶다며 우리 먼저 가라고 하였다. 구시가지 쪽으로 가고 있을 테니 연락하라고 하고 헤어졌다. 알트마르크트 광장에 도착했을 때 전화가 왔다. 이곳에서 만나 같이 이동하였다.
드레스덴은 독일 작센주의 주도로 엘베강을 중심으로 강남의 구시가, 강북의 신시가로 나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후방도시로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가 1945년 2월 연합군의 융단폭격을 맞아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무너진 건물에서 시신이 나왔고 지하 방공호 한 군데서 1천여 명의 시신을 찾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분단 이후 동독에 속했을 때는 구시가지의 폐허 속에 사회주의 양식 건축물로 난개발이 이루어졌지만 통일 이후 독일 연방정부는 드레스덴의 구시가지를 폭격 이전으로 되돌리는 계획을 세워 성모교회를 비롯한 구시가지의 건축물과 광장을 복원 신축하였다고 한다.
여행을 준비하던 중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 2>를 구매하였다. 우리가 갈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그리고 드레스덴 여행기여서 아주 좋은 가이드북이 될 것 같았다. 드디어 그 책이 빛을 발할 때가 된 것 같다. 독일의 작은 변방도시지만 문명사의 여러 시대를 이끌었고 전쟁의 참극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다시 재건된 드레스덴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드레스덴의 구시가 중심으로 가는 도중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등을 보니 베를린에서 본 것과 같은 캐릭터가 있었다. 암펠만(Amperlmann)이라고 중절모를 쓴 귀여운 신사의 모습이다. 동독 시절부터 사용되던 신호등 표식인데, 통일 후 버려질 위기에 처해졌다 그래도 살리자 하는 요구가 있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암펠만을 모티브로 한 굿즈도 많고 기념품 가게도 따로 있다고 한다. 윤지는 상수시 궁전에서 암펠만 열쇠고리를 하나 샀다.
드레스덴 왕궁 가기 전 길목에 매표소가 있다. 이곳에서 통합입장권을 구매하면 드레스덴 왕궁(레지덴츠 궁전), 츠빙거 궁전, 미술관, 박물관 등 대부분 입장가능하며 하루 종일 유효하다. 종이 입장권에 유효일을 볼펜으로 써 주었다. 오늘 입장하려 하였으나 오후 2시가 넘어 하루 만에 다 돌아보기에는 힘들고 대충 보기에는 입장료가 너무 아까워 다시 가서 내일 날짜로 바꿔 달라 하였다. 오늘은 구시가지를 쭉 스캔하고 내일 차례차례 입장하여 관람하기로 하였다.
엘베강을 바라보며 아우구스트 다리를 건너기 전 구시가 광장 오른쪽을 보면 엄청난 길이의 작품이 보인다. '와~ 저게 뭐지? 아하, 드레스덴에서 유명하다는 군주의 행렬이구나.' 군주의 행렬은 2만 3천여 개의 마이센 도자기 타일을 붙여 완성한 벽화로 작센주의 지배자들과 기마행렬을 그렸다. 길이 101.9미터, 높이 10.5미터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원래 독일은 도자기 기술이 없었다.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 기술을 배워 도자기 예술작품을 만든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다. 1700년대 만든 화려한 도자기 작품들은 츠빙거 궁전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마이센 도자기가 워낙 유명하여 온라인몰에서 검색해 보았다. 가격을 보고 입이 쩍 벌어진 기억이 있다.
바로 옆으로 나오니 구시가지 광장이 있고 그 앞에 커다란 동상이 있다. 공정왕 아우구스트 좌상이다. 정면의 문구가 "Friedrich August der Gerechte" 게레히트는 '정의로운' 또는 '공정한'이라는 뜻으로 공정왕 아우구스트다. 그로 인해 드레스덴은 작센 지방의 왕국,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로 폴란드와 작센을 지배했는데, 나폴레옹 황제한테 작센 왕위를 받아 '아우구스트 1세'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에 드레스덴은 '바로크 도시' 또는 '엘베의 피렌체'라는 별칭도 얻었다고 한다. 지금의 드레스덴은 아직도 복원 중이겠지만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때의 모습은 얼마나 화려했을까?
슈텐테하우스 옆 돌계단을 올라가면 브륄의 테라스로 연결된다. 1740년, 아우구스트 3세(공정왕)의 친구였던 하인리히 폰 브륄 백작이 도시를 방어하던 요새의 일부였던 이곳을 멋진 정원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브륄의 테라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인 괴테는 엘베 강가를 따라 꾸며진 이 정원을 보고 ‘유럽의 발코니’라는 별명을 지어 주기도 했다.
강을 따라 걸으면서 앉을 만한 벤치를 찾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비어 있는 벤치가 있어 앉아서 엘베 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엘베강과 아우구스트 다리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강 건너 여러 궁전과 복원된 건물들도 보였다. 그늘에 앉아 있으니 강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시원하다. 하늘의 구름도 한 편의 수채화 작품처럼 보인다. 드레스덴 주민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도 옆 벤치에 앉아 한참을 사색하다 자리를 뜨셨다. 여유로운 광경이다.
브륄의 테라스를 지나 내려가면 노이마르크트 광장에 성모교회(Frauenkirche)가 우뚝 서 있다. 성모교회는 루터파 개신교 교회로 첨탑이 하나인 세계 최대의 사암건축물이다. 원래는 가톨릭 교회였으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회가 되었다. 교회 앞에는 마르틴 루터의 동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졌지만 동독 공산당은 교회를 재건하지 않고 방치하였고 오히려 교회 돌덩이를 가져가 브륄 테라스 보수 작업에 썼다고 한다. 이후 드레스덴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기부금을 모으고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2005년 2월 재건되었다. 중간중간 시커먼 돌들이 드레스덴의 상처와 아픈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쇼핑몰을 들렀다. 쇼핑몰에는 엄청 큰 마트가 있어 우리 딸이 사 오라고 한 독일 과자들을 샀다. 마트에는 다양한 종류의 하리보가 엄청 많았다. 어린이 윤지에게 한국에 없는 맛이 무엇인지 물어 하리보 몇 종류를 구입하였다. 물론 누텔라 비스킷, 하누타 그리고 호텔에서 마실 맥주와 물도 구입하였다.
오늘 저녁은 호텔에서 한식을 먹기로 하였다. 가지고 온 컵라면과 햇반, 갖가지 반찬으로 저녁을 해결하였다. 윤지와 지현언니가 가장 기대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우리 음식을 먹으니 맛있었다. 윤지는 저녁으로 큰 컵라면 2개, 햇반 2개, 고추참치 2개, 김 3개를 먹어 치웠다. 지현언니도 못지않게 먹는 것 같았다. 암튼 다들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마트에서 사 온 과일을 디저트로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드레스덴 엘베강의 야경을 보기 위해 구시가지로 다시 갔다. 8월의 독일은 9시가 넘어야 해가 지기 때문에 깜깜한 야경 보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40대 후반 아줌마들이라 너무 늦게 밖에 있는 건 힘들다. 어둑어둑해진 절반의 야경을 감상하고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