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침에 일찍 잠이 깬다. 잠이 안 오면 일어나면 되지 뭐. 출근 준비를 하듯 샤워하고 화장을 하였다.
8시 정각 호텔 로비로 내려가서 공항에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먼저 폴란드 항공 데스크에 전화를 했다. 분실신고서 참조번호를 묻더니 이동 중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이거 뭐지?’ 다시 베를린 공항 수하물분실센터로 전화를 하였다. 그곳 직원은 아주 친절하게 우리 수하물은 아직 베를린 공항에 도착하지 않았고 오는 대로 호텔로 보내준다고 하였다. 우리가 공항에 가야 하는지 물어보니 올 필요는 없다고 한다.
여행사에서도 메일이 왔다. 월요일에 바르샤바에서 베를린으로 오는 폴란드 항공 비행기는 오전에 한 대밖에 없었다. 화요일에는 3대나 있다고 하니 아마 이 중 한 비행기를 통해 배송될 것 같다는 의견을 보내주었다. 합리적인 추측이다.
그럼 오늘도 맛있는 조식을 먹고 하루를 시작해 볼까?
베를린 지하철 U5
독일 연방의회의사당
오늘은 일일 교통권을 사서 베를린의 중심으로 가는 날이다. 멀리 가지 않아 A존 티켓을 구매하면 된다. 어제도 갔던 호텔 가까운 지하철역인 알렉산더플라츠 역으로 갔다. 티켓을 구매하고 노란색 펀치 기기에서 펀칭을 하였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연방의회의사당(Bundestag) 쪽으로 갔다.
1894년에 지어진 연방의회의사당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파손되었다가 재건되었으며, 1990년 통일 이후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이용되고 있어 독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베를린 시내를 360도로 감상할 수 있는 돔 전망대가 있어 베를린의 랜드마크를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기에 출발 전 홈페이지를 방문하였으나 이미 8월 초까지 예약이 마감되어 있었다. 아쉽지만 건물 밖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브란덴부르크문이 있다. 꽃보다 할배 팀들이 베를린 갔을 때 맨 처음 갔던 곳으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18세기 후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명령에 따라 지어졌으며, 1788년에 착공되어 1791년에 완공되었다. 냉전시대에는 동서 베를린을 나누는 베를린 장벽이 이 문을 둘러싸고 있어 분단의 아이콘이었으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통일의 상징이 되었다. 높이 26미터, 폭 65.5미터로, 12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5개의 통로를 형성한다. 문 위에는 ‘쿼드리가’라고 불리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전차를 타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상은 평화를 상징하며 브란덴부르크문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무래도 독일의 지배자들은 프랑스의 개선문 같은 상징적인 건축물을 원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사람들이 꽤 붐볐다. 베를린 여행의 출발점인 듯했다. 많은 단체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이드들은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눈으로 감상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공부하기로 하였다. 물론 나는 지금에서야 공부하고 있지만...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는 멋진 호텔과 카페들이 즐비했다. 저 호텔의 1박 요금은 얼마일까? 생각하면서 홀로코스트 기념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브란덴부르크문
홀로코스트 기념비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관으로 홀로코스트 희생자 600만 명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곳이다.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스텔라 필드와 지하 정보센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5년에 개장하였다. 2710개의 기둥이 거대한 미로 같은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이루고 있다. 입장은 무료다.
지하 정보센터의 전시는 유럽 유대인의 박해와 학살, 범죄의 역사적 장소를 기록하고 있다. 일찍 도착하였는지 대기줄이 없어 바로 입장 가능하였다.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었으나 한국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림과 영어 설명을 읽으면서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나치 하에 핍박받고 학대받은 역사를 사진으로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유대인 어린이가 죽기 전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읽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을 관람하던 외국인들도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며 글을 읽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몇 년 전 보았던 '피아니스트'가 생각났다. 둘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다. 제2차 세계 대전 나치의 만행과 유대인들이 겪은 고통을 잘 표현한 영화로 감명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독일은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런 추모관을 만들어 억울하게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하고 반성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일본인으로부터 겪은 박해와 학살도 이와 못지않은데, 지금 일본의 태도는 독일과는 너무나 상반되어 마음이 씁쓸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강연에서 했던 말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딱 들어맞는 말이다.
크고 작은 네모난 기둥 사이로 빠져나오니 정보센터 입구에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일찍 오길 잘했다.
이곳을 나와 다시 남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포츠다머플라츠, 즉 포츠담광장이 나온다. 포츠담은 학창 시절 역사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 지도자들이 나치 독일 항복 이후 유럽의 재건과 태평양 전쟁 종결을 논의한 회담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약속한 ‘포츠담 회담’으로 많이 들어본 곳이다. (물론 실제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약속하진 않았지만) 베를린 중심부에 있어 19세기부터 광장 주변으로 주요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면서 베를린 내 주요 거점으로 성장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베를린이 분단되면서 방치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독일이 통일되자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다시 태어난 역사적인 광장이다. 현재는 엔터테인먼트, 레스토랑, 상점으로 가득 차 베를린의 새로운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쇼핑센터 입구에 야외 음식점들이 즐비하였다. 맥주와 안주, 샌드위치나 간단한 식사를 팔기도 하였고 아이들의 시선을 끄는 장난감 가판대도 있었다. 내 눈에 커다란 프레첼(또는 브리첼)이 들어왔다. 독일에 왔으니 독일 과자를 먹어봐야지 하고는 하나 사자 했는데, 반응이 시원찮다. 어쨌거나 하나 사서 맛을 보았다. 짭조름하다. 우리 팀들에게는 별 인기가 없어서 내 손에 계속 들려 있었다.
한참 걸어와 덥고 다리도 아파 내부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카페로 향했다. 커피와 아이스크림이 주력 상품인가 보다.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먹으면서 아픈 다리도 달래고 화장실을 이용하였다.
독일 베를린 와서 느낀 건데, 출입문이 철문으로 엄청 두껍고 무겁다. 호텔 출입문도 그렇고 카페에서도 입구문이나 화장실문이 엄청 무거워서 있는 힘껏 밀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방음도 확실하다.
카페를 나와 베를린 장벽을 볼 수 있는 공포의 지형학(Topographie des Terrors)이라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기 이전 독일 나치 시대 대부분의 범죄를 계획하고 지도하는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특히 온갖 테러를 처리하기 위한 비밀경찰(Gestapo)의 본부이자 독일 제국 총독부가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전쟁 시 파괴된 흔적이 남아 있고 나치 시절 프로파간다와 테러에 대한 자료들을 보여주는 전시장도 둘러볼 수 있다. 전시관 앞에 사람들이 많이 줄 서 있어 내부는 들어가지 않고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만 둘러보았다.
한낮에는 기온이 많이 올라가고 햇빛이 강렬하여 더웠다. 양산도 모자도 없이 장벽과 사진을 둘러보니 더워서 힘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동독과 서독의 경계점인 체크포인트찰리 방향으로 이동하던 중 작은 매점이 보여 물을 사려고 줄을 섰다. 500cc 물 한 병이 3유로다. 관광지라 그런지 엄청 비싸다. 물 한 병이나 맥주 한 병이나 음료수 한 병 값이 다 똑같았다. 그래도 목이 말라 물을 사서 나눠 마셨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베를린장벽이 생긴 이후에도 동서독인들이 출입을 했던 곳으로 주로 군인들이나 외국인, 연합국 측 인사들이 지나다니는 주요 통로였다. 살벌했던 분단과 냉전을 상징하는 작은 검문소에는 두 사람이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이 사진은 뭔가 작업을 하고 나면 그 시절 신문같이 편집되어 A4용지에 출력해 준다. 우리도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베를린시와 체크포인트 찰리를 홍보하는 글과 함께 우리의 모습이 담긴 신문인데, 우리에게 좋은 기념품이 되었다. 감사의 마음으로 기부금 상자에 약간의 기부금을 넣었다. 근처에는 장벽을 넘고자 했던 이들의 사연과 기록들이 있는 전시관이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거리에 전시되어 있어 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타인의 삶'이라는 독일 영화가 떠올랐다. 1980년대 동독의 비밀경찰이 예술가들을 도청 감시하는 내용인데,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 긴장하면서 보았던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동서독을 오가는 곳이 이곳인가 보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 근처에 있는 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기념품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기념품은 무너진 장벽 조각이다. 역사의 산물이긴 하지만 기념품으로 사 오기는 좀 그래서 구경만 하였다. 여기에서 베를린 여행 기념으로 브란덴부르크 문과 전승기념탑 등 베를린의 랜드마크가 있는 머그컵을 하나 구입하였다.
베를린 장벽
공포의 지형학
다음 일정은 잔다르멘 마르크트 광장으로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불린다. 콘체르트하우스 베를린을 중심으로 북쪽에 프랑스돔, 남쪽에 독일돔이 있다. 주변 지역은 예전부터 프랑스인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콘체르트하우스와 광장은 공사 중이어서 그런지 가장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다.
독일돔에 들어가기 전, 입구 계단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던 중 아주 반가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오늘 우리 수화물이 호텔로 배송된다는 것이었다. 너무 기쁜 소식이었다. 우리 넷 다 이 메일을 받았다. 아쉽게도 내 것은 내일 배송된다 하였다. 우리가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기쁜 마음으로 독일돔 내부 관람을 시작하였다. 배낭은 사물함에 보관한 후 관람을 시작하였다. 독일 의회 역사 관련 사진과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돔 전망대를 보려고 들어갔는데 오늘은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부 관람 중 독일 중년 아저씨가 우릴 보고 "안녕"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였다. 한국어와 태권도를 배운다고 하였다. 아주 반가운 한국말이라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고 헤어지면서 "안녕히 계세요."를 알려주었다.
잔다르멘 마르크트 광장 프랑스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벽화
처음 계획된 일정에는 없었지만 시간이 좀 있어 버스를 타고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이동하였다. 노란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베를린 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다. 시티투어버스를 따로 탈 필요가 없는 듯했다. 어제 한번 둘러본 곳이라 그런지 낯익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의 동쪽 일부에 조성된 미술 갤러리이다. 1990년 세계 각국의 미술 작가들이 그린 100여 점의 벽화로 구성되어 있다. 1.3km를 다 돌아볼 수는 없고 가장 유명한 작품, 드리트리 브루벨이 그린 '형제의 키스'를 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79년 동독을 방문한 소련의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서기장 호네커가 공식 석상에서 실제 키스를 한 사진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1986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도 동독을 방문하여 호네커와 축하 입맞춤을 하였는데, 이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1989년 10월 7일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일에 호네커는 열병식에서 베를린 장벽이 100년은 갈 것이라 호언장담하였는데, 22일 뒤 장벽이 무너졌다고 한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호텔로 가는 픽업차량 안에서 이 작품들을 쭉 볼 수 있었다. 오늘은 그때 보았던 방향과는 반대쪽으로 내려가면서 작품을 감상하였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더 이상 동서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베를린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분단 시절에는 장벽이 이런 갤러리가 될지 상상도 못 했겠지. 그것을 예상할 수 없었듯이 우리나라의 남북을 가로막는 휴전선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통일 한국의 관광명소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장벽 너머에는 슈프레강이 흐르고 있고 주변의 공원이 평화로워 보였다. 강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는 이미 많이 걸었다.
다시 길을 건너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빨간색 버스가 지나가는데 두 차량이 연결되어 엄청 길었다. 2층 버스도 아니고 지하철 같이 길어 눈길이 갔다. 그 시내버스 광고가 또다시 눈에 들어왔다. Spice up your life! Koreas Nudel Nr.1 SHIN RAMYUN 우리나라의 신라면 광고였다. Ramen이 아니라 Ramyun이었다. 신라면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아주 반가웠다.
알렉산더 플라츠에 독일의 유명한 커리부어스트(Curry wurust) 체인점인 Curry 36이 있어 방문하였다. 테이블만 있어서 앉아서 먹을 수는 없고 서서 먹었다. 소시지에 카레가 들어간 토마토소스를 뿌려 감자튀김과 함께 내어준다. 짭조름하니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맥주 없이 이것만 먹기가 아까워서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Netto에 들러 맥주를 사 방에서 먹기로 하였다. (지현언니는 화장실 문제로 밖에서 맥주를 마시려 하지 않았다.) 소시지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필스너 맥주와 함께 커리부어스트를 먹으니 독일에 온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시내버스 신라면 광고
커리부어스트와 감자샐러드
P.S. 호텔에는 반가운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지연된 수하물이다. 그런데 내일 온다고 했던 내 캐리어가 와 있고 오늘 온다고 했던 윤지 캐리어가 없다. 윤지가 엄청 실망하였다. 네 개 다 한꺼번에 왔으면 좋았을걸. 내일 아침 공항에 다시 전화를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