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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3일 포츠담 상수시 궁전

[DAY 4] 7월 31일 (수)

by 채숙경

드디어 옷을 갈아입었다. 베를린 날씨는 한국처럼 그렇게 덥지 않았다. 또한 부산처럼 습하지도 않았다. 한여름 햇빛은 강하지만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바로 시원하였고 바람마저 불면 오히려 서늘하였다. 그래서인지 땀을 별로 흘리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수하물 지연으로 3일 동안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어제 우리는 윤지 수하물을 제외한 우리의 짐을 모두 받았다. 윤지는 오늘 하루 더 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


윤지를 위해 공항에 전화를 한 번 더 하였다. 윤지의 캐리어는 배송 중이며 오늘 안에 배송될 예정이라고 한다. 배송업체 연락처를 보내달라고 하니 메일로 배송업체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전화 연결은 잘 되지 않았다. 이메일로 배송예정시각을 알려달라고 보냈더니 잠시 후 답신이 왔다. 오늘 오후 3~4시경 배송될 거라 한다. 아무래도 윤지 캐리어는 다른 팀에 갔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베를린으로 올 때 청소년 통일 캠프팀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 전국의 청소년 2~30여 명이 인솔자와 함께 동유럽 여행을 왔었는데, 그 팀 수하물에 같이 끼여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오늘 온다 하니 그것도 다행이다. 우리는 내일 아침 베를린을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베를린 근교로 간다. 바로 포츠담 상수시 궁전. 2024년 상반기 최대의 히트작 '눈물의 여왕'에서 김수현과 김지원이 신혼여행으로 갔던 곳이자 이후 다시 재회한 곳이다. 화면에서 너무 예쁘게 나와 어딘지 궁금했는데, 베를린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라 하루 다녀오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또다시 알렉산더플라츠 지하철역을 지나 알렉산더플라츠 역으로 갔다. 오늘은 ABC존 1일권을 구매하면 될 것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을 위해 자동발권기가 아니라 티켓부스를 찾아갔다. 할아버지였다. 포츠담 상수시 궁전 간다 하니 ABC존 사면 되고 어린이는 무료라 하였다. 아~ 어제 우리는 윤지를 위해 할인권을 구매했었는데, 무료란다. 그걸 몰랐네. 아깝다.


포츠담으로 가는 RE1 기차를 타고 베를린의 남서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된다. 날씨도 맑고 경치도 예뻐 기분도 좋다. 베를린 시내를 통과할 때는 시내 구경,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니 시내와는 또 다른 경치 구경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어느샌가 포츠담에 도착하였다.


포츠담 중앙역을 나오면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버스 승강장이 엄청 많고 공사하는 곳이 있어 어지러웠다. 우리는 10번 승강장에서 695번을 타야 한다. 그런데 10번 승강장이 보이지 않는다. 1~8번까지는 보이는데 9~10번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지? 저쪽에 있나? 이리저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와 같이 승강장을 찾는 듯한 엄마와 아들이 보였다.

"상수시 궁전 가세요?"

한국인으로 보였기 때문에 바로 우리말로 물었다. 그들도 상수시 궁전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10번 승강장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쪽으로 가길래 같이 갔다. 여행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감이 좋은 것 같다. 그쪽으로 쭉 가서 코너를 살짝 도니 10번 승강장이 있었다. 이제 695번 버스가 오길 기다리면 된다. 1일권으로 구매했기 때문에 오늘은 하루종일 어떤 교통수단도 이용할 수 있다.


중학생 아들과 독일 여행을 온 엄마였다. 요즘 사춘기 애들은 부모랑 같이 여행을 안 가려 한다던데, 이 집 아들은 엄마랑 단둘이 잘 다니는 효자구나. 일주일 남짓 독일을 여행하고 내일 근처 폴란드 어느 도시를 들렀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독일 기차는 연착도 자주 하고 플랫폼도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많아 DB 내비게이터 앱을 깔아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오~ 좋은 정보 감사해요.


상수시 궁전까지 약 20분 정도 걸린다. 가는 동안 포츠담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비가 잘된 도시였다. 이곳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되었겠지? 상수시 궁전으로 가는 버스가 몇 대 있는데 695번 버스가 궁전 바로 앞까지 가는 것 같다.


Schloss Sanssouci 역에 내려 매표소로 갔다. 상수시 궁전만 가는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3시에 입장 가능하다고 하였다. 상수시 궁전은 하루에 관람객 2000명만 입장하도록 제한하고 있어 인터넷으로 사전에 예약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아까 버스 승강장에서 만난 엄마와 아들은 그 입장권을 구입하고 남는 시간은 포츠담 시내에 갔다 온다 하였다. 아들은 영어 의사소통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진짜 효자네. 우리도 그 표를 구매하고 남는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정원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오피스 뒤쪽에 있는 카페테리아에는 줄도 길고 먹을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우리도 궁전 밖 포츠담 쪽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상수시 궁전 앞 계단식 정원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 나갔다. 키 큰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처럼 걷기 좋은 길이었다.


갑자기 눈앞이 이상해졌다. 오른쪽 왼쪽 눈이 다르게 보였다. '어~ 내 눈이 왜 이렇지?' 오른쪽 왼쪽 눈을 번갈아 감아보면서 비교해 보아도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 '무슨 일이지?' 걱정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몇 미터를 갔을까? 지현언니가 나를 보더니

"너 안경 왜 그래?"

그 말을 듣고 선글라스를 벗어보니 왼쪽 알이 빠져 도망가고 한쪽만 남아 있었다. 그러니 양쪽이 다르게 보일 수밖에. 눈의 이상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햇빛 아래 소중한 눈을 보호하기 위한 선글라스는 있어야 되는데 알이 어디로 갔지?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며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포기하고 나중에 하나 새로 사자. 어쩔 수 없다.'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혼자 한쪽 알이 빠진 선글라스를 쓴 내 모습을 상상하니 웃겼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고 얼마나 웃었을까? 소진언니는 내가 한쪽 알만 올리고 있는 줄 알았단다. 내 안경은 그런 기능이 없는데... 그나마 모자가 있어 다행이다.

시원한 에이드와 맛있는 커피, 와플을 점심으로 먹고 다시 상수시 궁전으로 갔다.



상수시(Sanssouci)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근심이 없다’라는 뜻으로, 1747년 당시 프로이센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2세의 여름 별궁으로 지어졌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떴으며 실내 장식은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내부에는 프리드리히 2세의 집무실과 왕비의 방, 대리석의 연회장과 화려한 콘서트홀 등이 있다. 화려한 분수를 지나 계단을 따라 궁전을 향해 올라가면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노란색의 상수시 궁전을 맞이할 수 있다.


윤지와 소진언니는 이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체력이 방전되었는지, 발이 너무 아픈지 정원 관람을 포기하고 그늘에 앉아 쉬겠다고 하였다. 그것도 좋은 것 같다. 편안하게 앉아서 멋진 상수시 정원을 감상하는 것. 지현언니와 나는 정원을 더 둘러보고 나서 궁전 입장시간에 맞춰 내부 관람을 하였다.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지만 규모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궁전치고는 아담한 사이즈였다. 로코코 양식에 맞게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했다. 여기서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어 그냥 눈으로만 감상하였다.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니 4시가 다 되었다. 포츠담 시내 관광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시내 구경은 버스 안에서 시티투어처럼 눈으로 하고 다시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 궁전을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다행히 버스 대기 줄이 길어 그들이 타는 동안 뛰어가서 탈 수 있었다. 버스는 올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운행하여 또 다른 포츠담 거리를 볼 수 있었다.


포츠담 중앙역에 도착하니 소진언니가 RE1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 뛰자. 우리 넷은 그렇게 또 뛰어 열차를 탈 수 있었다. 그다음 베를린까지는 편안하게 갈 수 있다. 아까 만났던 엄마와 아들도 우리와 같은 열차를 탔다.

"남은 여행 즐겁게 해요."


다시 알렉산더플라츠 역. 역 바로 옆에는 갤러리아 백화점이 있다. 이곳에서 남편에게 줄 선물을 보러 갔다. 선물이란 다름 아닌 배낭이다. 등산배낭 3 대장 중 하나인 도이터 배낭이다. 첫날 갔던 알렉사에서는 매장을 찾지 못하였지만 백화점에는 있을 것 같았다. 도이터 매장에는 수많은 종류의 배낭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할인을 하지 않아 한국에서 사는 가격과 별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여기서 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웃렛몰에 갔으면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을까? 배낭은 사지 말자.


여기 식당가에서 저녁 식사나 하자. 갤러리아 백화점 식당가에는 뷔페처럼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가져와서 먹을 수 있었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무게를 재어 가격을 매긴다. 100g에 2.5유로인가?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안 난다. 암튼 우리 같은 소식가들에게는 아주 좋은 식당이다. 소진언니와 나는 볶음밥과 채소 요리 중심으로 원하는 만큼 먹고 지현언니와 윤지는 육식 위주로 먹었다. 특히 윤지는 고기를 접시 한가득 가져와서 다 먹었다. 진정한 육식파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선글라스 매장을 들렀다. 백화점이라 역시 비싸다. 좀 더 저렴한 걸로 사야겠다 생각하고 나오려는데 언니들이 나를 붙잡고 하나 고르라고 재촉하였다. 우리 회비로 하나 사준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고생하는 동생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덕분에 예쁜 선글라스를 또다른 독일 여행 기념품으로 갖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여행은 이 선글라스와 함께 할 수 있겠다.


백화점을 나와 백화점 바로 옆에 있는 DM을 방문하였다. 우리나라의 올리브영 같은 매장인데, 독일뿐만 아니라 동유럽 지역에 널리 진출한 유명한 드러그스토어였다. 지현언니는 첫날 들렀던 DM에서 그곳에 있는 모든 제품을 싹쓸이할 것처럼 많이 샀다. 독일에 오면 꼭 사야 한다는 Balea 제품도 저렴하여 앰플, 크림 등을 샀다. 발포비타민도 여러 개 주워 담았다. 자신이 쓸 것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에게 줄 선물을 포함하여 장바구니 가득 구매하였다. 역시 여행은 쇼핑이지.


알렉산더 광장에서 호텔까지 걸어가도 되지만 오늘은 노란색 트램을 타기로 했다. 매일 지나다니는 트램을 보면서도 그걸 타고 가겠다는 생각을 왜 못한 건지... 갤러리아 백화점 위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광장을 내려다보다 지나다니는 트램을 보고서 그제야 떠올랐다. 일일교통권으로 탈 수 있는데, 어젠 왜 안 탔을까? 오늘은 트램 타고 호텔 간다. 한 정거장만 가면 되지만 다리도 덜 아프고 베를린에서 트램을 타보고 일석이조다. 트램 문이 닫히려는 순간 부부로 보이는 사람 두 명이 뛰어와 트램을 탔다. 그런데 둘 중 남자는 트램을 탔는데 여자는 타지 못했다. 서로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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