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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Jul 08. 2017

01. 난임(1)

연애가 육년, 결혼이 오년째였다. 결혼하기 전 무수히 많은 소문들이 있었다. 오래 만난 탓일까. 사고를 쳐서 결혼한다는 소문이 났다. 소문이 무색하게도 결혼하고 오년간 그노무 사고의 결실은 없었다. 소문에 일일이 대응하지도 않았다. 곧 있으면 결론이 날 소문이었으니까.


결혼 이후, 우리는 매우 즐거웠다. 그동안 못다한 여행을 다녔다. 인테리어에 심취해 이것저것 사들이고 바꾸어댔다.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일했다. 나름 치열하게 살고 있고, 신혼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개썅 마이웨이로 살기는 정말 힘들다는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압박이 왔다. 아기에 대한 압박. 도대체 왜 아기를 낳지 않느냐고 물어댔다. 결혼하고 얼마 안돼서부터 시작된 '좋은 소식 없어?'라는 말은 정말이지 듣기도 싫었다. 그노무 좋은소식. 대체 좋은소식이 뭔지. H는 그노무 좋은소식을 묻는데 짜증이 나서 누군가 그 질문을 하기만 하면 이렇게 대답했다. '매일이 좋은 소식입니다.'


처음엔 가족부터 시작이었다. 부모님은 매일같이 물으셨다. 물론 걱정이 되어 하시는 말씀이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말도 한두번이지, 이건 뭐 통화할 때 마다 물으시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부모님께는 투정이라도 부렸지만 시부모님께는 아니었다.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 그노무 좋은소식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난 마치 엄청난 죄를 지은 죄인마냥 움츠러들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하늘을 안보는거 아냐? (깔깔깔)' 나이만 안많았어도 확 한대 치고 싶은 인생의 역대급 모멸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연봉도, 직업도, 그 어떤 스펙도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저 난 애도 못 낳는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지 몰라도. 글쎄.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사실 우리는 아기를 갖지 않으려 노력한 적이 없었다. 우린 둘 다 아기를 원했다. 예쁜 아기를 낳아 가족을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공덕동에 있는 불임전문 ㄹ병원을 다녔다. 병원에 처음 갔던 날, 그 느낌을 잊을수가 없다. 우리같은 젊은 부부부터 나이많은 부부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표정은 별로 없었다. 다들 뭔가 초조해보였고, 답답해보였다. 아니 어쩌면 내 표정이 그랬기에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꺼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 병원에 다녀온 이후 우린 서로 말이 없었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도 나와 비슷한 감정이었을꺼다.


얼마 후 결과가 나왔다. 우리에겐 문제가 없었다. 그저 '이유를 알 수 없는 난임' 이었다. 이런 경우가 가장 어려운 경우라고 했다. 누구에게도 말한적이 없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조언했다. '스트레스 받지마'. 그노무 스트레스. 스트레스의 원인은 바로 질문하고 있는 당신 때문이라는걸 왜 모르는걸까. 제발 부탁이니 질문도, 조언도 사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했다. 당시 매일같이 야근하던 생활이었는데도 인공수정을 강행했다. 마음이 불편한 것 보다 몸이 피곤한게 나을것 같았다. 인공수정 날짜를 받고, 근무를 하다 점심시간에 나가서 인공수정을 받고 돌아왔다. 생리를 시작하고 삼일째 되는 날 부터 배란 유도 약을 먹고 이틀, 삼일에 걸쳐 초음파를 확인하고.. 시간 맞춰 내 배에 스스로 주사를 놓았다. 너무 우울해서 거울이 없는 서재에서 주사를 놓았다. 인공수정 이후엔 지긋지긋한 질좌약을 넣었다. 약은 컸고, 아팠고, 무엇보다 기름이 많아 매일 속옷을 손으로 빨아 삶아야 했다. 너무나 회의감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아기를 가져야 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원치 않는 아기가 와서 고민이라는데 왜 나에겐 단 한번의 기회도 주지 않는건지.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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