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ng Jul 12. 2017

02. 난임(2)

인공수정을 하는 내내 굉장히 우울했다. 그저 나 자신의 처지가 불쌍했다. 주사를 잘못 놓아 배에 멍이 들었을 때, 그냥 엉엉 울어버렸다. 멍자국이 더 나를 서글프게 했다. 배란유도제부터 30일간 줄기차게 약과 주사를 통해 호르몬을 주입해댔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인간은 나약했고, 호르몬의 노예였다.


대차게 시도했던 첫 번째 인공수정. 나는 젊었고, H의 정자 상태도 최상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정말 신경질이 났다. 내 몸에 난자가 자그마치 세 개나 있었는데 왜 실패한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실패 후 몸이 매우 좋지 않았다. 호르몬을 그렇게 투여해댔으니 좋지 않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난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딱 한 달을 쉬고 다시 인공수정을 강행했다.



두 번째 인공수정은 첫 번째보다 기분이 한결 나았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을 건너고 있기 때문인 걸까. 자괴감보다 의무감이 더 컸다. 주사를 맞는 시간 때문에 새벽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능숙하게 주사약을 섞어 배에 주사하면서 혼자 이렇게 말했다. '간호사가 체질이었나.' 그리고 보기 좋게 두 번째 인공수정 역시 실패했다. 처참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인공수정이 아닌 시험관을 시도하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시험관 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인공수정과 비교도 되지 않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잘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게도 비가 내렸다. 그것도 엄청.


시험관을 포기했다.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났다. 오기가 생겼다. 아기 없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생각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그 주에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더 많이 물어댔다. '좋은 소식 없니?'. 차라리 이 상황이 트루먼쇼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를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아직까진 임신에 있어 여자의 책임이 큰 것 같다.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용하다는 한약방부터 좋은 병원, 혹은 아기를 셋 낳은 사람이 입던 속옷을 준다고까지 했다. 새벽에 일어나 물을 떠놓고 삼신할머니에게 빌어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다 넌덜머리가 났다. 그럴수록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자꾸만 내 일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일을 그만두면 생길 거라고도 했다. 그럼 다달이 댁이 월급 주시던가요.


H와 고심 끝에 다 포기하자고 했다. 우린 이탈리아 여행 티켓을 예약했다. 최대한 호화롭게 다녀오자며 최고급 호텔에 좋은 렌터카를 예약했다. 매일 맛집을 검색했고, 관광지와 미술관 예약을 했다. 면세점 쇼핑을 했다. 환율을 봐가며 유로를 바꿨다. 운동을 시작했다. H는 건강을 되찾겠다고 했고, 나는 제시처럼 섹시한 몸매를 만들겠다고 했다. PT를 끊었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운동의 목적이 무어냐고 물었을 때 '제시'라고 대답했더니 헬스장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덕분에 죽어라 운동했고 제시...는 될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난임(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