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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Jul 18. 2017

03. 난임(3)

이탈리아 여행을 일주일 앞둔 어느 토요일, 평소보다 눈이 좀 일찍 떠졌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을 들이켜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반쯤 열린 유리 선반 사이로 배란 테스트기가 보였다. 이런 게 있었지, 싶어 누군가 쓸 사람이 있으려나.. 생각하며 집어 들었다. 꽤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사은품인 임신 테스터기가 보였다. 얼핏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보였다. 어차피 버릴 거 한번 해보기나 할까, 라는 생각에 집어 들었다. 난 원래 날짜가 워낙 불규칙한 사람이었기에 정말이지 아무 기대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버린 테스터기만 해도 백개가 넘었으니. 기대라곤 정말이지 1도 없었다.


두줄이었다.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잘못 본 건 아닐까 싶어 다시 봤지만 두줄이었다. 맙소사. 네*버 블로그에서 익히 봐왔던 두줄이었다. 백번도 천 번도 더 본 잔상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너무 놀라웠다. 발 끝에서부터 전율이 흘렀다. 자고 있는 H를 깨웠다. 둘이 말도 없이 울었다.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묵직한 느낌이었다. 그간의 그노무 좋은 소식이 드디어 찾아왔다. 불쑥.





누군가에게 자랑을 하는 것도, 으스대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너무나 많다. 사실 인공수정에 시험관까지 숱하게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그 마음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이해한다. 그저 나와 같은 상황을 지나온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


당신은 잘못이 없다. 당신은 못난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길 기다렸다. 넌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그냥 아무것도 물어봐주지 않길 바랬다. 동정 섞인 이야기도, 엄청난 정보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노무 좋은 소식을 물을 거면 기저귀 한 박스, 혹은 분유 열 통은 사오든지 하고 나서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가벼운 이야기 속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는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나에 대해 물어봐주길. 잘 지내고 있는지, 일하는 건 재미있는지, 최근에 본 영화 중에 뭐가 좋았는지 등등.  


아기를 낳고 키우는 지금, 벌써 또 다른 질문들이 쇄도한다. '젖은 잘 나오니?' '둘째는 언제 가질 거니?' '살은 언제 어떻게 뺀 거니?' '아기 데리고 벌써 이렇게 나오는 거 아니다'... 끊임없는 질문. 내가 대답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다음에 다시 물어볼 그런 텅텅 빈 질문들. 그런 이야기들에 크게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그저 나와 당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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