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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Aug 21. 2017

08. 모유수유(1)

모유수유는 산모에게 있어 굉장히 큰 시험 중 하나이다. 임신 전부터 모유가 아기에게 가장 좋은 음식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고 임신 중에도 모유수유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있었다.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엄마만의 고유한 특권이라는 기대와, 수유를 하는동안 신경 써야 할 식습관이나 젖몸살과 같은 부분에 대한 걱정. 32주쯤 되었을 때 다니던 병원의 모유수유 클리닉을 찾았다. 모유수유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일대일로 자세히 가르침을 받았다. 수유에 있어서 자신이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제왕절개로 미드미를 출산하고 악착같이 하루를 버텼다. 남편이긴 하지만 아직 남의 편이라는 생각이 드는 H에게 산모패드를 갈아달라고 할 자신이 없어 엄마께 부탁하고는 아, 내가 빨리 일어나 걷는 게 상책이겠다 싶었다. 10시에 수술을 하고 꼬박 22시간을 무통 한통과 진통제 세 대로 버텼다. 그리고 다음날 징하게도 독하게 일어났다. 아침 여덟 시경 H의 부축을 받고 어기적 어기적 일어나 걸었다.


아기가 보고 싶었다. 한걸음에 달려가진 못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아기를 보러 갔다. 익히 공부해온 대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그럼 그렇지, 나오지 않았다. '그래, 아직 출산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잖아.'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신생아실에서 수유 콜이 올 때마다 90도 각도로 허리가 굽혀진 채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 수유를 했다. 언젠가 양껏 나올 그날을 위해 열심히 또 열심히.


이상했다. 이론상으로는 이 정도 노력을 했다면 일주일쯤 지났을 땐 아기가 먹을 만큼의 양이 나왔어야 하는데. 열흘이 지났는데도 유축 시 10ml가 나왔다. 방법이 잘못되었나 싶어 여기저기 묻기도 했다. 하지만 방법은 정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ml.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매번 수유 콜을 다 받았다. 밤중 수유도 했다. 두 시간, 세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밤새도록. 모유촉진차와 분말을 먹어보기도 했다. 미역국을 사발로 들이켰다. (나중엔 몸속이 어항이 된 느낌이었다. 미역이 그득그득 가득 찬 느낌) 사비를 들여 한 회당 십만 원을 주고 다섯 번 마사지를 받았다. 수유 후 매번 미친 듯 유축을 했다. 고3 수능 때 이 정도로 노력을 했으면 서울대를 장학생으로 갔을 텐데. 내 인생에서 최대의 노력이었다. 모유수유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그렇게 공부했는데, 말도 안 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모유가 나오지 않는가?' 'YES' or 'NO'는 내 알고리즘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리원에서 여느 때처럼 미드미에게 직접 수유를 하고 분유 보충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와 유축을 했다. 처음으로 20ml가 나온 날, 나름 조금 기쁜 마음으로 신생아실로 가서 노크를 했다.

"저, 이거 미드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생아실 선생님이 방긋 웃으며 내가 건네는 우유병을 받았다. 그리고는

"어머, 미드미 엄마 고생했어요, 아이고 아가가 다 먹고 이만큼 남았나 보네"

물론 방금 막 가져온 따끈따끈한 모유라는 사실을 안 선생님은 굉장히 미안해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이해가 됐다. 그렇게 조리원에 있는 14일간, 그노무 모유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왜 난 모유가 안 나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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