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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Aug 15. 2017

07. 제왕절개(2)

전신마취를 해 본 경험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편도선이 안 좋아서 수술했던 기억. 정확한 병명이나 이런 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설레었던 그 시절.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어지간히 떨렸다. 살면서 입시, 취업, 결혼 등등 엄청난 일들을 경험했고 크고 작은 문턱을 많이 드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수술은 그 어느 경험보다 떨렸다. 아픔에 대한 두려움과 내일이면 미드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다. 39주 4일로 예정되어있던 수술이 4일이나 앞당겨지는 바람에 그 긴장의 강도가 좀 더 센 듯도 했다.

'아, 이제 솔로로서의 뷰티풀 라이프는 안녕이구나.'


수술 당일이 되었고 잔뜩 긴장한 나와 달리 그저 오늘도 하루의 시작인 병원의 숨 가쁜 일상이 대조적이었다. 미드미는 끝내 돌지 않았고 수술은 진행되었다. 신기하게도 오전 태동검사 시 자궁수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39주 4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던 나 자신에게 웃음이 났다.

'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니.'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와중에도 수술이 아쉽지 않았다.

'진정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구나. 하하.'


하도 검색하고 후기를 읽은 덕분에 대강 어떻게 진행되리라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뜨악했던 건 소변줄이었다. 오 마이 갓. 소변줄을 꼽았던 그 찌리한 기분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아,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 기분이 느껴저 순간 부르르 한다.)


하반신 마취 후 이런저런 잡음들이 들렸다. 내 하반신이 의지대로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수술이 진행되었다. 초록색 커튼이 눈 바로 아래 쳐져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순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느껴졌다. 아 지금 배를 가르고 있구나, 아 지금 양수가 나왔구나, 아 지금 아기가 나왔..? 응? 아기?


그랬다. 수술이 진행되고 얼마 안 되어 아기가 나왔다. 배가 시원했다. 뭔가 엄청난 것이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우렁차게 응애!!!! 하고 울어대는 아가를 기대했지만 우리 미드미는 그저 응-애 응-애 두어 번 힘없이 울었다. 아기를 처음 맞이하면 기분이 어떨까 수십 번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엉엉 울 줄 알았던 그 시간에 난 껄껄 웃어버렸다. 처음 아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많이 생각했었는데 난 그저 이렇게 말했다.

'미드마 안녕, 반가워'


쭈굴쭈굴할 거라 생각했던 아기는 생각보다 퉁퉁했다. 너무 작았다. 그런데도 머리카락이 아주 많았다. 모성애가 막 솟진 않았다. 그저 신기했고 알 수 없는 아련함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누가 수술을 '해 볼 만 하다'라고 했던가. 하긴, 모든 건 다 케바케인 것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항상 잊고 산다. 수술 후 24시간 동안 난 죽다 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증상을 훗배앓이라고 한단다. 처음에 1인실에서 하루정도 회복하고 이후 4인실로 옮겨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4일 내내 1인실에 있었다. 밤새 끙끙 앓아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옆 사람들도 회복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기를 낳는 진통에 비할바 못되겠지만, 너무 아팠다. 하도 이를 악물어서 이가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기 낳은 이야기를 하자면 누군들 영웅이 아니겠으랴. 그러나 그 또한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아픔으로,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무용담으로 예쁘게 포장되어져 버렸다. 아기를 낳기 전 그노무 국민 시어머니들의 여러 조언들, 그러니까 '수술하면 회복이 느리단다' '자연분만을 해야 아기가 면역력이 좋단다' '아기 돌려주는 병원이 있다는데 거긴 가 봤니?' '자연분만이 최고인데..' 뭐 이런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에 들들 볶여있을 많은 산모들에게 응원을 보탠다. 방법이 뭣이 중헌디. (나도 다 알고 있단 말이다!! 나도 속상하단 말이다!!) 그저 엄마도 아기도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하면 되는 것을. 수술을 했다고 엄마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아기를 낳는 건 정말이지 1억만 분의 1도 안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앞으로 펼쳐질 육아의 세계는 아주 길-다. 아주아주. (우리 엄마가 미드미를 봐주시는 걸 보며 느낀다. 아, 육아는 삼십 년을 넘게 해도 끝이 없구나. ㅎㅎ)


모든 수술 산모들이여, 화이팅!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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