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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Aug 07. 2017

06. 제왕절개(1)

임신 후 가장 기대되는, 그리고 두려운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자연분만과 모유수유였다. 아빠가 할 수 없는 고귀한 일이라는 생각과, 어쩌면 평생에 한번(많아야 두 번) 경험해 볼 수 있는 정말이지 스페셜 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신 15주쯤 부터 자연분만에 관한 후기와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나에게 자연분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꼭 자연분만을 할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어느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가 말했다.

"나 쑥쑥이 낳을 때 수술했잖아. 근데 만약에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난 수술할 거야."

"왜?"

"언제 나올지 두려움에 떠는 것도 싫고, 수술해보니 할만 하더라구"


그녀의 수술 예찬에 마음 한켠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술이라.. 좀 그렇지 않나?'

하지만 중요한 건 아기를 낳는 방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자신감을 입은 자만함은 결국 큰 오산으로 끝나고 말았으니.


미드미가 40주,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39주까지 역아였던 관계로 수술을 결심했다. 정확히 39주 4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혹시라도 그 사이에 미드미가 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최대한 수술 날짜를 뒤로 미뤘다. 나름대로는 간절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수술을 열흘 앞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카톡이 오십여 개가 와 있었다. 단체 톡방의 시시껄렁한 이야기겠거니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확인했는데 결코 가벼운 소식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병원, 그리고 앞으로 분만할 M병원에서 신생아 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비상이 걸린 것.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걱정이었다. '로타라는데 괜찮겠어?'


사실 로타바이러스는 흔한 것이었다. 영유아 장염의 경우 대부분 로타로 인한 감염이었다. 게다가 성인은 로타에 감염되어 치명적으로 아픈 일은 드물었다. 로타는 면역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장염과 같은 병으로 나타나 구토와 설사를 유발하지만 성인에게는 크게 힘쓰지 못하는 그런 바이러스였다. 그저 남 이야기였을 땐 그랬다. 하지만 상황이 내가 되어보니 달랐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이마에 링거를 꼽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끔찍했다. 도저히 그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다른 병원들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M병원과 가까운 산부인과는 거의 만석이었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거다.


결국 급하게 다른 지역의 병원을 찾았다. 마침 자리가 있어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모든 진료기록을 가지고 새로운 병원으로 갔다. 중요한 검사들은 다시 진행했다. 그리고 39주 4일에 수술하겠다는 원대한 내 꿈은 39주 1일에 수술하는 걸로 타협을 봤다. 그래, 아기를 받아준다는데 그깟 4일이 대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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