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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Jul 31. 2017

05. 역아

임신을 하고 나서는 하루하루가 신기했다. 울렁울렁 입덧도 신기했고 꼬물꼬물 태동도 신기했다. 보통 음식 냄새나 대중교통 속 사람들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게 입덧이라고 하던데 난 조금 달랐다. 글씨 입덧. 냄새보다는 글씨에 민감했다. 예를 들어 식당 앞에 갈비탕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면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글씨에 따라 입덧의 강약이 달랐는데, 갈비탕과 햄버거가 제일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었고 떡볶이가 그나마 적은 거부감을 주었다. 태동은 공기방울이 톡톡 터지는 느낌이라고 누군가 그랬는데 그건 굉장히 아름다운 표현이었고, 난 그보다 누군가가 똑똑하고 계속해서 작은 주먹으로 노크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물고기가 헤엄치는 기분이었지만.

임신 후 나는 검색의 달인이 되었다. 틈이 날 때마다 찾고 또 찾았다. 입덧, 태동, 비타민, 태교, 배 통증 등등... 검색은 하면 할수록 방대했고, 나중엔 너무 많은 정보들 속에서 내가 검색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태동이 막 시작되던 무렵 정기검진으로 병원을 찾았다.


'이기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네요. 그런데 공주님이 아직 반듯이 있네?'

여전히 시크하신 선생님. 그리고 조금 당황스러운 말씀.

'반듯이 있다고요?'

'네. 하지만 아직 많이 남았으니 자연스럽게 돌아올 거예요. 너무 걱정 마시고 고양이 체조 열심히 하세요'


아기는 필연적으로 세상에 나오기 위해 머리를 아래로 한다. 그래서 처음엔 아래에서 느껴졌던 태동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명치끝에서 느껴지게 마련이다. 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있어야 자연분만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아기를 갖게 되면 꼭 해보고 싶은 두 가지가 있었다. 자연분만과 모유수유. 그것은 아빠는 절대 할 수 없는 엄마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어느 정도의 책임감도 있었다. 꼭 그 두 가지는 해야만 엄마로의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랄까. 굉장한 의무감과 환상. 그런 것들.


선생님께 그 말을 듣고 온 날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역아 체조를 배워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했다. 고양이 자세라고도 하는 그 자세는 역아를 돌리는데 효과가 있다고는 하나 100%의 확률은 아닌 것 같았다. 소용없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아기를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무언들 못하리. 처음엔 생각날 때마다 하루 한 시간 정도 고양이 자세를 했다.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부터는 고양이 자세가 힘이 들어 하루에 20분 정도도 버겁긴 했지만 난 아기를 낳으러 가는 그 전날까지 고양이 자세를 했다. 이러다 고양이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야옹


하지만 명치끝 태동은 끝끝내 느끼지 못했다. 미드미는 끝까지 아래에서 발을 깔짝거렸다. '32주, 아기가 돌아왔어요!'라든지 '34주, 역아 탈출!' 이런 글들을 볼 때면 점점 초조해지곤 했다. 그리고 미드미에게 이야기했다. '미드마, 너 왜 아직 돌지 않는 거니? 좀 돌아눕거라 제발.'


점차 시간이 지나 아기가 커졌을 때, 그러니까 약 30주 이후부터는 아기의 단단한 머리가 명치끝에서 만져지곤 했다. 자고 일어나 아침에 배를 만져보고 아기의 머리 위치를 확인하는 일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미드미는 결국 39주 내내 역아였다. 뚝심 있는 녀석이다. 그렇게 죽어라 고양이 자세를 했으면 성의를 봐서라도 한 번쯤 돌아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누굴 닮아 이렇게 소신 있는지. 단 한 번도 돌아주지 않은 미드미는 그렇게 지금 내 옆에 있다. 역아여서 그런지 엄마 아빠에겐 없는 톡 튀어나온 예쁜 뒤통수를 가지고.




누군가 지금 역아로 고민하고 있다면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역아이건 정아이건 중요한 건 그저 산모와 아기가 건강하게 병원 문 밖을 나오는 거라고. 너무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스스로를 비난하지도 말기를. 그리고 낳아보니 낳는 방법은 정말 중요한 큰 사건이 아니니 그저 좋은 생각만 하기를! 육아의 시간은 길고 길기에 역아 그까이건 전 육아의 백분의 일도 차지하지 않는 그저 작은 해프닝일 뿐이니.


역아 맘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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