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ng Aug 28. 2017

09. 모유수유(2)

모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싶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분유도 엄청 잘 나온다는데, 모유가 안나오면 분유라는 훌륭한 대체식품이 있으니 무슨 걱정인가 싶다가도 그노무 잔소리꾼들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아픈곳을 쿡쿡 찔러댔다.

"모유는 잘 나오니?" "모유가 아기에게 가장 좋은 거잖니" "넌 수술을 해서 안그래도 아기가 면역이 약할텐데 모유라도 잘 먹여야 한다" "모유먹이니 분유먹이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왠 남의 모유에 그리들 관심이 많으신지. 너무나 지대한 관심속에 점점 작아져만 갔다. 제왕절개에 완분이라니. 철없고 책임감없는 엄마가 된 느낌이었다. 자연분만과 완모에 성공한 산모들은 자꾸만 상상속에서 당당한 금메달이라도 목에 달고 있는 느낌이었다. 조리원에서 매번 수유콜이 올 때마다 마주치는 다른 산모들이 부러워서 괜한 심통이 났다. 차라리 미드미가 모유수유를 거부하고 젖병만 찾아주면 변명이라도 하겠는데 날 닮아서 끈질긴 미드미는 매번 힘을 다해 젖을 먹었다. 이십분, 삼십분씩.

이런저런 부담과 속상함에 우울해져있던 어느 날,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이렇게 말했다.

"모유 안나오지?"

아니 이건 왠 신박한 질문인가. 모유 잘 나오니?에 이은 모유 안나오지? 는 무슨 화법이지.

"응 이모, 모유 안나와. 10ml나오는데, 이제 미드미는 60ml~80ml먹어대서.. 의미가 있나 싶어"

"내 그럴줄 알았어. 스트레스 받지마. 우리 집안 내력이야."


그랬다. 내가 이상한게 아니었다. 우리 집안 내력이란다. 선천적으로 모유가 안나오는 사람들이 있단다. 소수긴 하지만. 그래서 그 옛날 아주 옛날 분유가 없던 시절 우리 왕왕할머니는 모유가 너무 안나와 아기에게 쌀로 미음보다 더 묽게 우유와 비슷하게 끓여 먹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맙소사. 어쩐지 엄마도 모유 이야기를 한번도 꺼낸 적이 없더라니.


그날 이후,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내가 노력해서 될게 아니구나, 싶었다. 근 한달간 안써본 방법 없이 모든걸 해봐서 아쉬움도 없었다. 모유는 미드미의 간식으로, 때로는 가끔 딸꾹이가 찾아왔을 때 멈추게 할 손쉬운 수단으로 사용되곤 했다. 그리고 한달쯤 후 많은 이들이 겪는 젖몸살 한번 없이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지금 미드미는 완분으로 쑥쑥 잘 크고 있다. 평균 몸무게와 키에 맞게 잘. 앞으로의 면역이나 명철함은 두고 봐야 알테지만 '왜 안나와 스트레스'로 가득한 모유를 하루 일곱 여덟번을 주는 것 보다 나을거라는 생각으로 사랑이 가득 담긴 분유를 맛있게 주고 있다. 모유를 줄때만큼 밀착해서 조곤조곤 예쁜 말과 함께.




제왕절개, 그리고 완분아가.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진심 어린 조언은 하지 못했을 두가지. 누군가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하게 생각하세요!' 라고는 말할수 없을것 같다. 분명 스트레스가 될 두 가지 문제니까. 하지만 한가지, '같은 스트레스로 고민했던 사람이 여기 한명 더 있으니 너무 외로워 마세요. 그리고 생각보다 아가는 무럭무럭 잘 크고 있으니 염려는 조금 놓으셔도 됩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에겐 두번째 커다란 난관, 이유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08. 모유수유(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