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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Oct 16. 2017

[번외편]

#1.

H의 가장 친한 친구 부부에게 연락이 왔다. 출산을 축하하며 나름 기억에 남을만한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래오래 쓸 물건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샀다면서 커다란 상자를 보냈다. 상자를 열어보니 젖병소독기가 들어있었다. 제일 잘 나가는 색이라고 추천받았다던 소독기는 가운데 물방울 모양이 와인색이었다.

"근데, 나 모유수유할 건데 이거 쓸 일 있을까? 아님 바꿀까?"

"너 좋을 대로 해. 정 맘에 안 들면 같이 가보던지"

"윽, 그리고 나 와인색 별로야. 난 파랑 계열이 좋은데"


에라이. 쓸 일 있을까 걱정하던 젖병소독기는 현재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만나는 가장 친한 아이템이 되었다. 가끔 젖병소독기가 와인색이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글쎄, 색깔은 절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나 좋은 성능을 가졌는가, 그리고 얼마나 사용이 손쉬운가가 상품의 본질을 결정할 뿐. 그보다 매일 색깔을 살피는 건 미드미의 대변이다. 파란색 아이템보다 중요한 당신의 황금색 변!



#2.

'아기 추운 거 아니니?'

살면서 들어본 말 중 가장 많이 들어본 말 Best 5위 안에 드는 말이다. 네, 아가는 춥지 않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가는 당혹스럽게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딸꾹질을 하곤 했다. 아가는 분명히 춥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적절한 타이밍의 딸꾹질은 추운 아가를 방치하는 모진 엄마를 향한 따가운 시선과, 스피드 퀴즈의 정답을 맞힌듯한 당당함을 부르곤 했다. '거봐, 내가 딱 보니 추워 보이더만.'

아니다. 정말이지 아가는 춥지 않다. 8월 한여름. 연신 폭염 경보가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곁에 두고도 에어컨 한번 시원하게 켜보지 못했다. 기온이 33도를 웃돌아도 아기가 추울까 봐 걱정하는 많은 분들 덕에 미드미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컸다. 그나저나 딸꾹질, 하니까 생각나는 Best 10위 안에 드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아기 딸꾹질한다. 물이라도 좀 먹여라'

신기하게 아가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딸꾹질을 했다. 처음엔 소변을 보거나 먹은 우유가 잘 소화가 되지 않을 때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혼자 옹알이를 하거나 너무 흥에 겨워 막 웃다가 딸꾹질을 하기도 했다. 많이 할 땐 하루에 다섯 번도 하곤 했는데 신기하게 그때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걱정을 했다. 딸꾹질을 하다 아기에게 정말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나중엔 혹여 딸꾹질을 하게 되면 난 웃으며 자리를 잠깐 뜨곤 했다. 나에게 큰일이 날 것 같아서.



#3.

전에 모셨던 차장님께 가끔 안부를 전한다. 날이 추워져 건강 조심하시라는 말과 함께 처음으로 미드미의 사진 두장을 보내드렸다. 가장 예쁘게 나온 사진을 고르고 골라서. 하루 종일 바쁘셨는지 저녁 늦게서야 답장이 왔다. '랭아 고마워, 덕분에 건강 챙겨가면서 일하고 있다. 미드미 좀 더 크면 밥 먹으러 한번 와 아기도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그다음 말씀이 참으로 대박이다.

'믿음 군 사진이 너무 듬직해서 옷 좀 선물하고 싶은데 주소 좀 불러봐'


아이고 차장님. 믿음 군이 아니라 믿음'양'인데 말입니다. 가장 예쁜 사진을 고르고 골라 보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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