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객관적으로 잘 생긴 편이다. 쌍꺼풀 없는 조금 처진 큰 눈과 높은 코는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때 그림 같은 예쁜 콧구멍을 자랑했다. 남자치고는 턱도 갸름한 편이다. 지금이야 나이를 먹어서 예쁜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소위 말하는 리즈시절에는 여러 여자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오 년 전 결혼식날 하객들은 너도나도 H를 칭찬하기 바빴다. 신랑이 예쁘다는 소리를 백번 넘게 들은 것 같다. 신부는 성격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무슨 뜻일까. 하하. 하지만 뭐 크게 불만은 없었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난 나름 객관적이니까.
상대적으로 나는 H보다 외모적으로는 아래였다. 왼쪽만 쌍꺼풀이 진 짝눈과 낮은 코가 대표적인 지표였는데, 사실 난 짝눈과 낮은 코보다 외모적 콤플렉스라고 느꼈던 건 각진 턱이었다. H는 가끔 차를 마시다 굉장히 그윽한 눈으로 날 보고는 "네 턱이 내 것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네 턱에 내 수염이 합쳐졌다면 정말 멋있었을 거야."라는 실없는 농담을 하곤 했다.
하지만 우린 공평하게 하나씩 나눠 가졌다. 그는 잘 생긴 외모에 비해 작은 키를 가졌다. 5센티미터만 더 컸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는 H는 지성피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잘생긴 외모를 가리는 뾰루지들과 그들이 남기고 간 흉터들을 원망했다. 성격 면에서도 조금은 차갑고 냉정한 그는 가끔 나의 수더분함과 털털함을 부러워하곤 했다. 반면에 나는 좋은 키와 좋은 몸매, 그리고 좋은 피부를 가졌다. 상냥한 편이었고 화려하고 톡톡 튀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현재 외모로도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자신감을 물려받기도 했다.
미드미가 생기고 우리는 이런저런 바람이 있었다. 외적으로 H의 외모와 나의 키와 피부를 닮는다면 미드미는 우리보다 나은 인물이 될 거라 생각했다. 내적으로 H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과 나의 긍정과 창의력을 닮는다면 우리보다 나은 직업을 택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웃었다.
미세먼지 가득한 어느 봄날 미드미는 태어났다. 처음 아가를 보았을 때 우리는 신기함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두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공한 것 같아. 눈이 길어. H 당신 닮았나 봐." 정말이지 아가는 눈이 길고 컸으며 오뚝한 코를 가졌다. 이목구비가 얼굴 안에 꽉 차서 여백이 없어 보였다. H는 내심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연예인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연예인을 시키느냐, 아이돌을 시켜야 하느냐의 기로에 놓인 부모의 고민은 50일이 지난 후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엄청 크다고 생각했던 눈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통통한 두 볼 사이로 코는 쏙 숨어버렸으니. 맙소사. 아기의 얼굴이 이렇게 바뀌어 버리다니.
시간이 흐르고, 미드미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H와 나의 얼굴이 묘하게 섞였다고 느낀다. 우리의 욕심으로 외모는, 키는, 피부는, 성격은... 많은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나주지 않은 미드미도 너무 사랑스럽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두 턱으로 엉엉 울어대는 모습도, 과자를 양 손에 쥐고 먹다 온 얼굴에 허연 자국을 한가득 남겨둔 촌스러운 모습도, 목과 손목 주름 사이에 가득 끼어있는 먼지도, 반경 1m 이내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응가 냄새도, 감기에 걸려 양쪽 코에서 콧물이 두 줄로 나란히 걸어 나온 모습도 사랑스럽다. 어느새 우리가 바랐던 그 이상적인 모습들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 나는 미드미의 턱을 가만히 만져보곤 한다. 만질 때마다 H의 턱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H는 8시면 미드미를 재우려고 애쓰는 중이다. 성장 호르몬을 위해 빨리 재워야 한다는 말고 함께. 우리에게 나름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인가 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이지 신기한 건 미드미에겐 우리에게 없는 한 가지가 있다. 톡 튀어나온 뒤통수. 나도, H도 절벽에 가까운 뒤통수를 가졌는데 미드미는 두상 하나는 참 예쁘다. 인생 참 우리 생각대로 되는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