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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Nov 13. 2017

18. 뒤집기

비교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미드미는 8시만 되면 잠이 들었다. 미드미가 눈을 비비며 졸려할 때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8시였다. 목욕을 시키고 마지막 분유를 먹이고 나면 자는 미드미 덕분에 8시는 나의 퇴근시간이 되었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수면 패턴을 가진 나와 정 반대로 '잠'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H의 잠 습관을 닮은 미드미는 밤잠만큼은 기가 막히게 자줬다. 정말이지 고맙게도.

덕분에 8시부터 나에게는 휴식이 생겼다. 요령이 생긴 언젠가부터, 나는 미드미를 재우기 전 한 시간을 미친 듯 썼다. 밀린 집안일을 초스피드로 끝내고 8시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놀았다. 그래 봤자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는 등 아주 소소한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8시에는 모든 것을 멈추고 쉬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 시간.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가장 많이 한 건 스마트폰이었다. 이런저런 쓰잘데 없는 시간을 보내고 11시가 조금 넘으면 웹툰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육아 어플들을 접하게 됐는데, 그중 매우 핫한 어플을 한동안 보았다. 그 어플엔 미드미의 하루 일과. 이를테면 먹고 자고 놀고 싸는 기록들을 할 수 있었고, 미드미와 같은 디데이를 가진 아가들의 성장 일기를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다른 아가들의 기록을 보는 건 꽤 흥미로웠다. 나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 그러니까 감기라던가 수유량, 발달상황 등을 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거기까지였어야 했다.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발달. 발달이 문제였다. 아니, 미드미는 문제가 없는데 내가 문제였다. 80일쯤부터였나. 어플을 보는데 우리 아기가 뒤집기에 성공했다는 글이 있었다. 맙소사. 미드미는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데 뒤집기라니. 괜한 초조함이 생겼다. 검색창에 아기 뒤집기 시기를 검색했다. 웬걸. 아가들이 하나같이 다 빨랐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마음이 빨라졌다.

어느 날, 퇴근하고 온 H가 미드미를 보았다. 미드미는 그때 한참 뒤집기를 시도 중이었는데 몸을 옆으로 틀어 머리와 몸을 활처럼 휘게 하여 반동을 주는 중이었다. 하지만 뒤집기를 시도하는 중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H는 미드미의 노력이 가득 담긴 휘어진 몸을 단번에 편안하게 다시 뉘어주며 말했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고 있어, 편히 누워.' 그리고 나의 어이없는 표정을 보고 말했다. '나 잘했지?'

결국 107일. 미드미는 뒤집기에 성공했다. 미드미 뒤에서 처음으로 뒤집는 역사적인 순간을 동영상에 담겠다고 숨죽이고 있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뒤집기에 성공한 미드미를 얼싸안고 얼마나 소리를 질러대며 기뻐했던지. 영문도 모른 채 미드미가 따라 웃었던 기억이 난다.




107일 이후, 미드미의 발달상황은 생각나지 않는다. 일기에 적어두긴 했지만 뒤집기만큼 엄청난 기대와 초조함속에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서 미드미가 이만큼 더 성장했거니 생각할 따름이다. 첫 번째 발달에 대한 초조함. 첫째 엄마의 첫 번째 시험 같은 느낌의 발달을 통과하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때가 되면 다 하는 건데 뭐가 그리 초조했을까. 나, H, 그리고 당신 중 누가 가장 먼저 뒤집었으며 누가 가장 늦게 뒤집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하. 그렇게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될 순간이었겠구나.

그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가를 보며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미드미가 소리를 질러대거나 맥락 없이 울어댈 때, 안 먹겠다고 한입도 벌리지 않을 때,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처음 뒤집었을 때 생각을 한다. '그래. 때가 되면 좋아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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