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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Dec 06. 2017

19. 수유

 수유.라는 단어를 적자마자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민다. 이건 '화'라고 하기엔 너무 안쓰러운 느낌이고 '걱정'이라고 하기엔 나 스스로 느끼는 깊은 빡침이 있기에 딱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다. 무한한 걱정과 그로 인한 감정적 스트레스 정도의 느낌이랄까.

 


 생후 100일, 미드미는 정말 너무 잘 먹었다. 본인이 알아서 밤수를 끊는 대신 8시에 마지막 수유를 할 때면 알아서 240ml를 먹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수유에 한해서는 걱정이 없었다. 시간 맞춰 일어나 시간에 맞춰 알아서 정량을 먹어주는 아기는 몇 없을 거라는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드미는 평소보다 좀 더 먹기 시작했다. 원래 하루에 850~900ml 사이를 먹어주던 예쁜 미드미는 갑자기 1000ml를 넘기기 시작했다. 예방접종 겸 들른 병원에서 넌지시 '아기가 1000ml 이상을 먹는데요..'라고 물었더니 부담이 갈 수 있으니 가능하면 수유 텀을 늘려서라도 줄여보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걱정반으로 수유 텀을 늘리려 노력했었다.

 딱 일주일. 그러니까 미드미가 1000ml를 넘겨 먹었던 일주일 뒤 아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비슷한 시기의 아가를 키우고 있는 그녀는 아기가 잘 먹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고민을 들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잘 먹지 않는 아가를 둔 심정은 어떨까를 생각했다. 미드미는 너무 먹어 걱정인데 안 먹는 것도 진짜 힘들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미드미는 마치 통화 내용을 들은 것처럼 분유를 점차 줄이기 시작했다. 1000ml씩 먹어 걱정이었던 미드미는 800ml도 겨우 먹는 아기가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그것보다 점점 줄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유식을 하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180일쯤 시작하려 했던 이유식을 150일쯤부터 시작했다. 고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유식은 잘 먹어줬고, 점차 하루 두끼에 간식까지 챙겨 먹일 수 있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수유량과의 씨름은 계속됐다.

 첫 영유아 검진이 있던 날, 병원에서 수유량을 물었다. 200ml씩 4번, 800ml를 먹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드미는 600ml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고 병원에선 조금 신경 써서 먹여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매번 이유식 후 수유를 했는데, 날이 지날수록 점차 분유는 거부했다. 컵으로도 먹여보고 빨대로도 먹여보고.. 별 방법을 써 봤지만 수유량이 늘기는커녕 줄어들 대로 줄어들어 한번에 100ml를 넘기는 적이 없었다. 하루에 많이 먹어봐야 400ml를 먹을 정도였으니.

 수유를 할 때마다 심신의 안정이 필요했다. 처음엔 엄청 잘 먹는 것 같이 허겁지겁 분유병을 빨던 미드미는 다섯 번을 채 빨지 않고 홱 돌아섰다. 우유병을 손으로 밀어내고 입을 꾹 다문채로 요리조리 피했다.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며 분유병이 들어올 자리를 아예 차단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데워주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고, 하루 네 번씩 돌아오는 분유와의 씨름은 나도 미드미도 지치게 했다.

 주변에선 다들 그랬다. 애가 먹기 싫어하는데 그냥 두라고. 어차피 분유는 줄여야 하는 거고 이유식을 늘려야 하는 건데 뭘 그렇게 분유에 집착하냐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사람마다 육아를 하면서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하나씩 있다는데 아마도 난 그게 '식'과 관련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왠지 '먹이는' 부분은 내가 미드미를 얼마나 잘 보살폈는가를 대변하는 성적표 같았고, 그 객관적 점수는 몸무게로 나타나는 느낌이었으니.. 급기야 미드미는 8.5kg에서 근 두 달을 정체하고 있었다. 먹는 양은 늘지 않고 활동은 늘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애가 탔다. 그래서 특히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면 수유시간을 피해 움직였다. 혹시라도 바깥에서 수유를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미드미와 씨름하면서 한 방울이라도 더 먹일 수 있는 곳에서만 수유를 했다. 어르고 달래고 노래도 부르고 분유를 데워도 볼 수 있는 그런 곳.




 미드미는 여전히 분유는 싫어한다. 그리고 난 아직도 포기가 되진 않는다. 대신 분유를 먹이기 전, 미드미의 어마어마한 짜증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분유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 이를테면 분유 빵이나 고구마죽 같은 간식을 만들어 먹이며 위안을 삼는다. 언젠가 미드미가 커서 "엄마, 나는 왜 우리 반 민아보다 작아?"라고 묻는다면 씩 웃으며 이 글을 보여줄 예정이다. "엄만 최선을 다했단다 미드마"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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