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좋겠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어서.
따뜻한 된장찌개, 노릇노릇 부추전, 새콤한 달래무침, 시원한 조갯국, 얼큰해서 코가 뻥 뚫리는 육개장, 고향의 맛 라면... 내가 좋아하는 이 많은 음식들을 편하게 먹기까지 엄청난 수고로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유식을 통해 깨닫는다. 사람이 한 끼의 밥을 먹을 수 있는 건 그동안 그 한 끼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매일 분유만 먹던 미드미가 처음으로 곡물을 먹었다. 분유를 '마신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면 이유식은 '먹는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미드미의 첫 이유식은 누구나 그렇듯 쌀미음이었는데, 초보이자 첫 아이의 엄마는 유난스럽게도 쌀가루가 아닌 유기농 생 쌀을 전날부터 불리고 갈아서 미음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쌀을 가루 내는 일은 어려웠고 두 번의 시도 끝에 쌀미음을 만들어 첫 숟가락을 떼던 날, 호들갑을 떨며 동영상을 찍었다. 생각보다 미드미는 잘 먹었다.
어릴 때 난 참 식습관이 좋지 않은 아기였다고 했다. 따라다니면서 겨우겨우 반 그릇 먹일까 말까 한 식성에, 입맛은 까다로워서 가리는 것도 참 많았다고 했다. 엄마가 혼내가며 식탁에서 밥 먹는 습관을 길러보려 애썼지만 당시 함께 계셨던 시어머니가 언제나 손주를 감싸는 바람에 혼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나. 이런 내 식습관은 환경적 변화에 의해 고쳐졌으니, 아래로 줄줄이 동생들이 셋이나 생기는 바람에 '지금 먹지 않으면 이 음식은 다시 먹을 수 없다'는 생존과 직결되어 자연히 좋아졌다. 물론 지금은 뭐든 잘 먹는 잡식성이 되긴 했지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어린 시절 편식으로 인해 솔직히 말하면 건강체질은 아니다.
반면에 H는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다. 워낙 꼼꼼한 성격에,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니 알아서 잘 먹어야겠다는 본능이 컸던지 가리는 것 하나 없이 뭐든 잘 먹는 타입이다. 빵이나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을 사랑하는 나와는 달리 탄수화물 덩어리를 좋아하지 않는 H는 매 끼니 밥, 국, 반찬을 정갈있게 차려 먹는 편이다. 그래서 난 내심 미드미가 나보다는 H의 식성을 닮기를 그토록 바랬다.
미드미는 바램대로 이유식을 기가 막히게 먹었다. 가리는 것 없이 주는 대로 아주 잘. 덕분에 만드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미드미가 점점 커가면서, 미드미와 나 사이에 이틀에 한번 꼴로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유식 후기, 하루 세 번 120ml씩 이유식을 먹었던 미드미를 위해 거의 매일 이유식을 만들어야 했다. 한 번은 사 먹일까 싶어 시판 이유식을 알아봤지만 위생을 떠나 한 달에 족히 20만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사 먹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처음엔 거실에 엎드려 낑낑거리며 소리로만 엄마를 찾던 미드미는 어느덧 배밀이 단계를 지나 잡고 서기 시작했고, 이유식을 만들 때면 급기야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서는 통에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었다. 잡고 서있는 미드미를 살짝이라도 잘못 건드리는 날엔 다리가 꼬여 벌러덩 뒤로 넘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방에는 매트가 두 개씩 깔렸고 냉동실 한 칸은 야채 큐브들로 가득 찼으며 시간 절약을 위해 작은 압력밥솥 하나가 새 식구가 되었다. (하도 기특해서 칙칙이라 이름도 붙여줬다.)
어느 날, 소고기와 표고버섯을 넣은 죽을 먹이는데 문득 미드미가 부러웠다. 따뜻한 이유식에서는 내가 생각해도 참 맛있는 냄새가 났다. 뭐든 시간이 약이라고 하도 만들어댔더니 정말이지 기가 막힌 맛이 났다. 간을 하나도 안 했는데도 이런 감칠맛을 낼 수 있다니. 나 자신에게 뿌듯했다.
"미드마, 너는 좋겠다. 너네 엄마가 이렇게 맛있는 밥 매일 만들어줘서. 나도 우리 엄마한테 가서 밥 먹고 올래."
뭘 아는지 모르는지 배시시 웃는 그녀. 마지막 숟가락까지 냠냠 맛있게 먹어주고는 얼굴에 잔뜩 붙은 밥풀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떼먹느라 바쁜 미드미를 보며 문득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안 먹고 돌아다녔을 나를 생각해보니 애가 탔겠다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15cm는 더 크게 키워준 그녀의 정성에 박수를 보냈다.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았지만, 난 나중에 미드미가 크면 엄청 생색낼 예정이다.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