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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Jan 02. 2018

23. 삼차신경통

수고했어, 오늘도

 머리를 빗을 때마다 시큰거렸다. 엉킨 부분이 있어 몇 가닥이 빠질 때면 너무 고통스러웠다. 얼굴에 있는 신경에 누군가 실을 매달아 일분에 한 번씩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광대뼈와 그 주변 살들이 아려왔다. 아래 잇몸과 턱 주변도 욱씬거렸다. 신기한 건 얼굴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오른쪽만 통증이 있었다. 오른쪽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라면 왼쪽은 고요하기 짝이 없는 해변이었다. 고3 때 처음 시작된 삼차신경통의 증상이었다.


 처음엔 편두통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머리가 아프기도 했고, 두통약을 먹으면 씻은 듯이 나았다. 날이 추워지거나 잠을 잘 못 자면 발생했기 때문에 감기의 일종이라고도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고는 하도 자주 발병하는 통에 혹시 사랑니 때문에 시작된 치통이 아닐까 싶어 사랑니를 뽑았다. 그래도 계속되는 통증에 스물여덟 살 때 처음으로 의문을 가졌다. 다들 이런 아픔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걸까? 얼굴이 딱 반쪽만 아픈 이런 통증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비슷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편두통이면 머리가 가장 아팠을 테고, 두통이면 이가 가장 아팠을 텐데 나는 얼굴이 아팠다. 그것도 한쪽만. 근 십 년 만에 병원을 찾았고 이런저런 검사 끝에 삼차신경통이라는 병명을 받았다. 처음 병명을 받았을 때 나의 통증을 정확하게 콕 집어주는 명칭이 있다는 사실에 속이 다 시원했던 것 같다. 나의 경우, 스트레스와 꽤 직결되어 있었던 경험이 있어 삼차신경통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쯤이면 나름 최대한 신경 써서 발병을 멈추게 하는(?) 요령이 생기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은 날을 포함해서 며칠간은 커피나 초콜릿같은 카페인을 멀리한다던지, 일부러 좀 일찍 잠을 청한다던지, 땀 흘리는 운동을 조금 힘들여 한다던지. 꽤 심리적인 방법이었지만 효과를 보기도 했다.


 육아휴직후 근 일 년간 삼차신경통을 잊고 살았다. 육체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힘들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훨씬 덜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최근에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고 너무나 오래간만에 맞는 통증이었던 탓에 좀 힘들기도 했다. 삼사일을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한 후 또 어느새 개운해진 얼굴을 만져보며 그동안 나도 모르게 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육아에는 밤낮이 없었고, 바로바로 보여지는 성과는 미미했으며, 겉으로는 티 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겠지.


 문득 주변의 아기 엄마들이 보였다. 적어도 내 주변엔 한가롭게 사는 엄마들은 없었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엄마'라는 직함이 이렇게 많은 것을 내포하는 것이었나 싶을 만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가정을 위해, 배우자를 위해, 자녀를 위해 먹이고 입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녀들은 나에게 도전이 되기도 했다. 남편이 무슨 반찬을 좋아하는지, 자녀가 제일 친한 친구 이름은 무엇인지, 자녀교육을 위해 가장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가치관은 무엇인지, 바른 가정을 세우기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나누던 정말 멋진 엄마들.


 급여가 나오는 것도, 상사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묵묵히 일하는 그녀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정이 직장인 곳에서 엄마의 손길이 닿았던 곳이 얼마나 반질반질하고 깨끗해졌는지, 덕분에 당신의 자녀가 얼마나 건강히 잘 컸고 배우자의 마음에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지 내가 알아주고 싶었다. 엄마들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크고 작은 통증들을 위로하고, 행복하지만 가끔은 참 외로운 그 시간들을 공감하고 싶었다.


 옥상달빛의 노래가 생각나는 밤이다.

 "수고했어요 오늘도. 아무도 당신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요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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