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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Jan 17. 2018

24. 고민

자다가 문득 눈이 떠졌다. 고요한 새벽, 코 끝에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 쿨쿨 잠 속에 빠져있었던 것 같은데 한순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습관처럼 시계를 보았다. 네시 이십오분. 한참을 직장에 있을때와는 다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10년의 재직기간 중 하루도 빠짐없이 네시 반쯤 눈이 떠지곤 했다. 그때마다 어둑한 방 안에서 찡그리며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아직 두 시간이나 더 잘 수 있다는 안도와 함께 다시 잠을 청하곤 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습관이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느꼈던 가슴 한구석이 답답한 그 느낌도 오랜만에 느꼈다.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복직이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둘이 벌기에도 아둥바둥한 서울살이. 물론 한 명의 급여로 세명쯤은 먹고살 수 있겠지만 꽤 빠듯했다. 말 그대로 '먹고사는'게 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외식을 한번 할 때마다, 공연을 한편 볼 때마다 돈 생각을 안 할 수는 없겠지. 아침에 일어나 화장은커녕 세수도 하지 않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것도 답답했다. 내 삶이 없어진다는 생각과 더불어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또한 우리에게 산적한 문제들, 이를테면 이사나 학교 등등의 것들도 나의 복직을 환영하는 여러 요소중 하나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속이 상했다. 어떻게 가진 아이인데. 정말 어렵게 가진 아기가 커가는 소중한 하루하루를 놓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었다. 미드미의 성장은 한 번뿐일 텐데 남의 손에 맡겨가며 키울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번 돈과 나가는 돈이 비슷할지도 모르는데 꼭 일을 하는 게 맞는지 따져보기도 했다. 일곱 시 출근과 여덟 시가 넘어 퇴근하는 엄마를 미드미는 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라는 생각과 함께 이직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만 주구장창 십 년을 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직장경력 덕분에 다른 분야로의 이직은 쉽지 않았다. 삼십 대, 기혼녀, 아이가 있는.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이미 어느 조직에서도 날 받아주기 힘들다는 말과 동일했다.


H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는 항상 현실적인 대안을 냈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임을 알면서도 가끔은 너무나 팩트만을 이야기하는 H와 대화하기가 싫었다. 어딘가 외딴섬에 홀로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었다. 고민 따위는 갈매기와 나누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것을 선택하자니 저것이 걸렸고, 저것을 선택하자니 이것이 걸렸다.





'아기는 엄마가 키우는 게 제일 좋아. 그게 정답이야.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정답만으로 살아지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내가 선택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되는 거 아닐까? 한번 사는 인생 먹고 싶은 탕수육 실컷 먹어가며 사는 게 행복 아니겠니. 행복하게 살자. 너무 고민하지 마.'라던 친구 허 여사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아직도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가장 후회 없는 선택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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