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맞을래? 침 맞을래?

by 난화

한 달 전, 뒤통수 아래 움푹 들어간 부분이 당기더니 통증이 나날이 심해졌다. 잠을 설쳐서 피곤한가 싶어서 며칠을 지켜보다가 나아지는 기색이 없길래 베개를 새로 주문했다. 새 배게보다 원래 쓰던 게 낫길래, 이것도 아닌가 해서 이번에는 수건을 돌돌 말아 목 아래에 넣고 자 봤다. 역시 차도가 없었다. 목과 어깨가 굳어서 그런가 싶어서 스트레칭 영상을 찾아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머리 전체가 울릴 만큼 고통이 심해져서 병원을 찾아 나섰다.


병원은 많은데, 갈 곳이 없다.


이사 온 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은 동네라 갈만한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냥 맘 편히 거리순으로 검색해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가면 좋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래도 명의(?)를 만나고 싶은 탓에 한참 검색을 했다. 병원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경험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을 데리고 간 가정의학과 선생님은 내가 둘째의 마지막 예방접종 날짜를 놓쳤다며 아동 학대가 될 수 있다고 흥분하셨다. 바로 그 둘째 앞에서 말이다. 발길을 돌려 인근의 이비인후과에 가니,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듣고 "뭐 축농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렇죠"라고 하셨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나는 찜찜하게 병원 문을 나섰다.


나에게 친절하지 않아도 되지만, 적어도 나를 아동학대범으로 몰아가거나 병명도 모른 채 약을 처방해 주는 곳은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병원 진료에 실망을 한 경험 탓에 괜찮은 병원을 찾기 위해 지역 카페에 문의도 하고, 방문자 리뷰도 꼼꼼히 살폈다. 뒷골이 땅기는 고통은 처음 겪는 거라 겁이 나기도 해서 마침 차로 15분 거리에 신경과와 정형외과를 같이 보는 큰 병원이 있어 찾아갔다. 방문자 리뷰도 좋은 편이어서 어차피 이런 거 믿을 수 없는데 하면서도 전문의가 여럿 있는 큰 병원이라는 기대를 안고 찾아갔다.


명절 연휴 다음날 찾아간 게 문제였을까. 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후회가 몰려왔다. 주차를 하기 위해 구불구불 지하 1, 2, 3, 4층 끝까지 내려갔는데, 자리가 하나도 없어서 다시 낑낑 차를 돌려 나가다 겨우 기둥 옆에 차를 세웠다. 주차하고 접수하러 올라가니 명절 한마당처럼 사람들이 잔뜩 모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접수를 위해 번호표 뽑고 한 세월, 다시 배정된 의사 선생님 방 앞에서 한 세월. 이미 도착한 지 1시간이 넘었고, 나의 통증은 더 심해지는 것 같고,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기다린 게 억울해서 끝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긴 했지만 답답한 공기가 병원 실내에 가득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고, 선생님은 진지하게 내 뒤통수도 눌러보고 근처도 눌러보며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시더니 말했다.


<후두 신경이 눌린 것 같아요. 일단 뒤통수에 주사를 맞아보고 안되면 경추 문제일 수 있으니 MRI 찍고 다시 봅시다. 곧바로 찍으라면 싫어하실 테니까 우선 엑스레이부터 찍고요.>


초진에 다짜고짜 주사라니? 그러고 나서 해결이 안 되면 다시 검사를 하자니? 얼결에 네, 하고 나왔지만 엑스레이 대기하고, 그 엑스레이 결과 들으러 대기하고, 주사 맞으러 대기하고, MRI 대기하고.. 도저히 못하겠다 싶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다시 올게요. 오늘은 진료만 보고 가겠습니다.>


신경과 전문의니까 내 증상을 보고 딱! 알아맞추기를 기대했던 걸까? 아니면 유튜브에 나오는 의사 선생님처럼 다양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운동이나 물리치료로 개선 가능한 병인지 알려주기를 바랐을까? 아무튼 나는 신경이 눌렸다는 것만 알고 도망치듯 병원에서 나왔다. 나올 때 병원에서 처방해 준 진통제를 먹었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얼른 낫고 싶은 마음뿐이다. 쇼핑하듯 골라서 병원에 갈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환자가 되어 보면 내 몸을 믿고 맡길 병원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과잉 진료는 아닐까, 안 써도 되는 돈을 덤터기 씌우는 건 아닐까, 진단이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이게 괜한 걱정은 아닌 듯싶다.


나는 결국 정통 한의학에 몸을 맡겨 보기로 했다. (뒤통수에 주사 맞을 사진이 없어서 그랬다.) 동네에서 오래 자리를 지켜온 한의원으로, 추나 효과를 봤다는 리뷰가 많은 곳이었다. 나는 전에 한의원 첫 방문에 우당탕탕 무슨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해 주며 20만 원, 30만 원을 뜯긴(?)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일부러 아주 소박한 곳을 찾아갔는데,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혼자서 물리치료 기계도 없이 오로지 침술과 부항, 추나로만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었다.


<굳었구먼. 이리 와 봐요.>


할아버지 선생님이 내 목에 손을 갖다 대자, "아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동안 추나 치료라고 해봤자 가벼운 안마처럼 끝나길래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힘으로 꾹꾹 누르셔서 이러다가 어디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내 비명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계속 꾹꾹 누르고 밀고 하시는데, 나는 내내 식은땀을 흘리고 몸을 꼬아가며 간신히 버텼다.


< 자, 좀 낫지요? 내가 아프게 한 게 아니라, 몸이 망가져 있어 손만 대도 아픈 거예요.>


이번에는 내가 정말 명의를 만난 걸까. 그날 추나 치료받으면서 차라리 주사 한 방으로 끝낼 걸 그랬나 싶게 아팠는데, 두 번, 세 번까지 방문하고 나니 두통의 80프로가 사라져서 신기했다. 증상이 회복되니 살 것 같다.


이러니 집안에 의사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원숭이처럼 날아다니는 우리 아들에게 한 번 운을 띄워 볼까? 틀림없이 자기가 의사가 돼서 엄마를 고칠 거라고 호언장담을 할 것이다. 이다음에 내가 늙으면 황금 지팡이를 사주겠다는 녀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