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때 싸돌아다니는 병에 걸렸었다. 주머니에 차비와 삼각김밥 사 먹을 돈만 있으면 일단 나갔다. 반복되는 일상, 비슷한 장면으로 가득 찬 인생에서 전혀 새로운 풍경 속으로 옮겨지는 게 짜릿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라면을 먹으며 뒹굴거릴 수도 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가면 바닷가 모래사장 위나 홍대 앞 놀이터에 가 있을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게 젊은 날에 누릴 수 있는 마법이었다.
나는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웠다. 같이 대학을 다닌 친구들이 임용고시 준비하고 취업을 할 때, 나는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고 많이 놀 수 있나 궁리를 했다. 노동에 바치는 시간은 아깝지만, 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번 돈으로 내 목숨을 유지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니까. 그래서 파트타임으로 학원 강사 일을 구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공과금 내고 밥 해 먹고 한 달에 두 번 치킨 사 먹을 정도는 됐다. 시간이 많으니까 버스나 전철을 타고 어디 다니기도 좋았다.
사람들 사는 거 구경하고, 세상을 구경하면서 정작 나는 그 삶 한복판으로 들어가 어울리지 못했다. 내가 젊고, 건강하고, 자유롭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젊음, 건강, 자유를 잃어버릴 날이 그렇게 빨리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에 가깝도록 결혼도 안 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멀쩡한 직장도 없으니, 나는 자타공인 불안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때쯤에 갑자기 철이 들어버렸다. 남들처럼 살아 볼 용기가 생겨 버렸다.
34살. 결혼하고 임용고시 봐서 선생도 되고 두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여행을 즐기던 나는 강제 폐업되었고, 아내와 엄마와 직장인으로서의 나만 남았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몸이 부서져라 내 식구들을 사랑했고 내 일도 아꼈다. 현실에 발이 묶여 어디 갈 수도 없었지만, 집을 나설 기운도 전혀 없었다. 만약 누가 나에게 3일간의 휴가를 준다면 호텔방에 누워 텔레비전만 주구장창 보고 싶은 인간이 되었다.
낯선 세상을 두 발로 디딜 여유가 사라졌는데, 그래도 나는 자꾸 어딜 가고 싶었나 보다. 핸드폰을 보다가 지역 축제나 여행 관련 글이 올라오면 거리, 비용, 주차 등을 꼼꼼하게 찾아보고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로 전송했다. 가지 않을 거고,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자꾸 정보를 모았다. 내 안에는 보지 못한 세상을 궁금해하는 청춘이 숨어 지내고 있었다.
올 겨울 나는 계속 집안에서 지냈다. 쓰레기 버릴 때랑 병원 갈 때처럼 공식적인(?) 외출이 아니면 추위와 사람을 피해 집에서 먹고 자고 했다. 몸이 아프고 피곤하니까 쉬자 했고, 쉬다 보니 더 늘어지고, 늘어지니까 더 피곤하고 그랬다. 어설픈 스쿼트 동작을 해가며 빠져나가는 근육을 사수하고자 애를 쓰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나는 기지개를 켜고 문밖을 나갈 수 있을까? 그동안 수고했다고, 잘 참았다고, 그러니 이제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 보자고 스스로를 격려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