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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없을 때는 니가 엄마야

by 난화

나에게는 전우애로 지내는 남동생이 있다. 우리는 가정에 휘몰아치는 고생을 함께 겪은 전우였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적군이기도 했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나 오랜 시간 함께 살았으나, 인간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샘플 같다고나 할까.


나는 하얗고, 동생은 까맣다. 동생은 코가 날렵하고 나의 코는 퍼졌다. 동생은 늘씬하고 나는 통통하다. 동생은 영화를 즐기고 나는 영화 보기를 방해한다. 집에서 영화를 보면 나는,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범인이야? 계속 말을 시키거나 와그작와그작 과자를 먹어댄다. 한 편의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서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동생은 무협 소설을 좋아하고, 나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한다. 동생은 분석적인 냉철한 말을 하고, 나는 감정 과잉의 말을 늘어놓는다. 동생은 육식을 즐기지만 나는 해산물이 더 낫다. 동생은 몇 종류 해산물에 알레르기가 있고, 나는 삼겹살을 못 먹는다.


"누나, 한 번도 예뻐본 적이 없어서 예쁜 게 뭔지 모르지?"


"야, 너는 어차피 공부 못하니까 학교 편하게 다녀서 좋겠다?"


우리는 죽어라고 서로를 눌러 이기려 들었다. 가족이지만 너무 다른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는 좋아하지 않고, 내가 잘하는 걸 상대는 못하니까 자꾸 짜증이 났다. 부딪치고, 밀쳐내고, 소리를 높이다가 결국 냉랭해져 버렸다.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데면데면한 하숙생처럼 지냈다. 밥은 같이 먹지만, 서로에 대해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이런 현실남매였을까?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주 일찍부터 동생의 보호자 노릇을 했다. 내가 5살, 6살 무렵부터 동생의 옷을 갈아입히고 얼굴을 씻겼다. 엄마, 아빠가 하루종일 집을 비우면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생의 뒤를 쫓아다녀야 했다. 나는 장난꾸러기 동생 옷에 지지가 묻을 때마다 갈아입혀 산더미 같은 빨랫감을 만들어 놓았다. 외가에 간다는 말을 듣고 동생을 이쁘게 꾸며주려고 집에 있는 가위로 애 머리카락을 듬성듬성 잘라먹었다가 엄마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엄마가 집에 와 보니, 더벅머리 영구가 뒤뚱거리며 걸어 나왔다고 했다. 순수했던 나의 노력은 그렇게 화를 당하는 결말로 끝이 났다.


"엄마가 없을 때는, 니가 엄마야."


분명히 나한테 엄마라고 해놓고, 엄마 노릇했다고 혼났으니 세상 억울한 일이다. 안 그래도 동생이 자꾸 이쁜 짓을 하고 눈웃음을 쳐서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아 눈이 뒤집히는데 말이다. 솔직히 우리 남매를 멀어지게 만든 것은 나의 엄마짓(?)과 불타오르는 질투심 탓이 컸다. 동생이 더 이상 아장거리는 아기가 아닌 학생이 되고, 목소리가 굵어지고 턱밑에 수염이 나기 시작하고, 덩치가 큰 고등학생이 되기까지도 나는 동생에 대한 간섭과 참견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보다 더 엄마 노릇을 하려 들었다.


나는 왜 그렇게 동생을 들볶았을까? 왜 동생을 내 마음대로 끌고 가려했을까?


그것은 동생을 향한 나의 일방적인 시샘 때문이었다. 엄마가 동생에게 마음을 깊게 주는 것도 싫고, 동생이 나머지 공부를 하거나 남의 집 텔레비전을 부숴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것도 싫고, 선뜻 누군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나와 달리 오랜만에 본 외숙모 품에도 덥석 안기는 꼴도 밉고, 동생 인물 좋다고 하는 말 뒤에 누나랑 안 닮았다고 하는 말은 진짜 듣기 싫었다.


나는 엄마가 될 수 없는 샘 많은 누나일 뿐이었다. 동시에 잠든 동생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며, 참 이쁘다, 하던 번뇌 가득한 꼬마 엄마이기도 했다.


엄마가 떠나고, 나와 동생이 남았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뒤이어 동생도 결혼을 했다. 우리는 더욱 연락이 뜸해졌다. 어느 늦은 밤, 잠든 식구들 몰래 놀이터에 나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내가 말했다.


"만약 네가 나보다 먼저 떠나면, 나는 엄마가 떠날 때보다 더 슬플 것 같아."


동생은 담담하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나도 그래..."


엄마,

얼마 전 이사 온 집에 동생이 와서

커튼도 달아 주고 텔레비전도 설치해 줬어.

손재주 없는 누나를 잘 아니까

장비를 챙겨 와서 집안 곳곳 뚝딱뚝딱 만지고 갔어.


엄마, 전에 내가 물어봤었잖아.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겨우 한다는 말이

자식들이 옆방에서 얘기하고 웃는 소리 들릴 때라고.

나는 에이~ 하며 안 믿었어.

그래서 또 시간이 한참 지나 한번 더 물었지.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너희 둘이 떠들며 웃는 소리 들릴 때가 제일 좋아.


엄마의 변함없는 답이었지.

두 번 똑같이 말해서 나는 진짜구나 했어.


엄마가 떠나고

엄마의 사랑을 놓고 다툴 일이 없어지니까

나는 그제야 동생을 제대로 보게 됐어.

얘가 나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을지

얘가 나 때문에 얼마나 답답했을지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라

고개를 들 수 없게 미안했어.

엄마를 닮은 엄마의 아들이

누나의 막무가내 억지를

받아내 준거구나 알게 된 거야.


그래서 말했어.

내가 어리석었다고.

너를 괴롭히는 줄도 모르고

내가 옳은 줄 알았다고.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다고.


......그렇게 괴롭힌 것도 없었는데 뭘.


무뚝뚝한 그 녀석 대답에

나는 또 한 바가지 울었네.


엄마 아들은 속 깊은 엄마를 닮았어.

그래서 나는 그 애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엄마,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다투지도 않고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리지도 않는데

이런 우리를 보며 미소 지을

엄마가 옆에 없어서 많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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