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살에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엄마는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주인집 아들 둘과 우리 남매를 데리고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데려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자전거는 주인집 아이들 거였고, 우리는 얻어 타는 처지였다. 비틀비틀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그날이 아니면 배울 수 없을 것 같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치는 데 겁이 많은 내가 자전거 타는 법은 용케 익혔다.
엄마가 자전거 뒤에서 손을 떼고, 홀로 앞으로 나아가던 순간의 짜릿함! 바람을 가르고 나아가는 자유로운 순간이 나는 참 좋았다.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어 신이 났지만, 우리 자전거가 없다는 것은 너무 애석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동생과 함께 탈 수 있는 네발 자전거를 사주셨는데, 당시 형편을 생각하면 엄청난 사치품을 들인 거였다.
한 달 월급이 전부 월세로 들어가던 어려운 시절, 엄마는 자전거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엄마 전용 자전거로 18단 기어가 달린 삼천리 자전거를 새로 구입한 것이다. 대문 안쪽에 자전거를 고이 모셔두고, 엄마는 우리에게 절대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이에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나갈까 봐 신경이 쓰였나 보다. 엄마의 새 자전거에 손도 대지 말라는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자전거는 엄마의 고단한 현실에 숨구멍이었던 것 같다. 목적지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나가 시골길을 쌩쌩 달리던 엄마의 뒷모습, 내 시야에서 멀어지는 엄마를 초조하게 따라가던 어린 내 모습이 가슴 깊이 박혀 있다.
어린이에게 '금지'만큼 달콤한 유혹이 있을까? 눈앞에 번쩍거리는 자전거는 있고, 잠금장치는 되어있지 않고, 엄마도 없고, 나는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싶으니 이것은 내가 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완벽한 조건이 아니냔 말이다!
나는 어린이다운 완전 범죄를 계획했다. 동네만 한 바퀴 돌고 그 자리에 그대로 갖다 놓을 작정이었다. 엄마가 놓은 위치, 자전거 바퀴의 각도도 잘 봐두었다. 내가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나는 순조롭게 엄마 자전거를 훔쳐서 원 없이 달렸다. 18단 기어가 달려서인지 언덕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거기서 바로 돌아왔어야 하는데...
친구 해영이를 만났다. 평소 깍쟁이 같던 그 애한테 나는 우리 집 자전거를 한껏 뽐냈다. 혜영이는 자기 집에 가자고 했고, 나는 자전거를 끌고 따라갔다. 그런데 대문 앞에서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자전거는 밖에 두고 와."
절대 자전거를 자기 대문 안 마당에 들일 수 없다는 거였다. 평소 시샘이 많았던 아이였는데, 어린 나는 그런 눈치가 없어서 친구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잠시만 놀고 나오면 되니까.
그렇게 자전거가 사라졌다.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지갑은 손 안대도 자전거는 훔쳐가는 민족 아니던가? 나는 엄마가 자기 전재산을 들여 산 자전거를 그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자전거를 찾느라 온 동네를 뛰어다녔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해는 지고, 가슴은 타서 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공장에서 돌아와 저녁을 차려 주려고 집에 들른 엄마는 자전거에 대해 물었다. 나는 어린이다운 거짓말로 둘러댔다.
"혜영이가 빌려갔어. 하루만 딱 타고 돌려준대. 너무 졸라서 내가 빌려줬어."
엄마는 당혹스러워했지만, 내일 꼭 찾아오라고 했다. 그다음 날도 나는 해영이 핑계를 댔다. 하루만 더 탄다고 했다면서 말이다. 삼일째 되던 날, 나는 집을 나갔다. 가출이었다. 어디서 구한 100원을 가지고 사탕 등을 먹으며 끼니를 때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을 나서며 나는 8살 동생에게 슬쩍 정보를 흘렸다. 나는 국민학교 놀이터에 숨어 있겠노라고.
해 질 녘 텅 빈 운동장 그네에 앉아 있으니 무서웠다. 시골 학교라 인적이 드물었다. 나는 막대 사탕을 녹여 먹으며 배고픔과 무서움을 이기려고 했다. 엄마의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아이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물이 발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동생이 나타났다.
"누나, 엄마가 와서 밥 먹으래."
엄마,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묵묵히 밥을 차려 주고
자전거에 대한 말은 꺼내지 않았지.
혼나지 않고 넘어가 다행이라고
철없이 안심했던 거 같아.
그 뒤로 어딜 가면 남의 자전거를
한참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어.
혹시나 내가 잃어버린 그 자전거일까 봐.
엄마는 이미 첫날부터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거야
아이의 서투른 거짓말을 어떻게 모를 수 있어.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삼일이나 기다리고,
그 삼일의 마음고생으로 대가를 치렀다며
내게 벌을 주지는 않았어.
차라리 매를 맞았다면 덜 괴로웠을까?
엄마가 아끼던 것을 잃어버려서 죄송해요.
엄마를 실망시켜서 죄송해요.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어.
그래서 아주 오래오래 슬프고 미안했어.
엄마에게 용서받은 10살의 나를
이제 나도 용서해 주고 싶어.
자전거는 엄마의 보물이었지만,
나도 엄마의 보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