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리아, 고도 1920m의 도시
나는 나름대로 게으름 피우면서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씻고 나갔는데 거리는 여전히 조용했다. 천천히 걸어서 동쪽 공원에 갔더니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조깅하는 사람, 조간신문을 보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박물관도 너무 썰렁할 것 같아서 나도 공원 벤치에 앉아 론리플레닛을 보면서 오늘 어딜 갈까 찾아보았다. 아침의 공원은 너무 좋았다. 그늘은 시원하고 햇볕은 따스하고 새는 짹짹 울어대고 모렐리아 거리의 오래된 건축물들 사이에서 새가 지저귀는 조용한 아침 시간을 그대로 어딘가에 담아 가고 싶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박물관도 가고 하니 12시였고 그제야 거리가 조금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궁과 박물관들을 둘러보고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 한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면서 잽싸게 메일을 보내고 여러 군데를 둘러보았다. 인터넷을 하니 속이 시원한 게 답답한 게 쑤욱 내려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인터넷 중독이었나 보다.
오늘은 카메라를 안 갖고 나가서 답답했다. 이 예쁜 마을에 내일 하루 더 있으면서 오늘 못 간 곳들도 가고 사진도 찍을 생각이다.
오늘 식사는 버거킹에서 했는데 저렴한 것으로 했더니 세트가 29페소였다. 내일도 이용할 생각이다. 오후에는 과일을 먹고 싶어서 사람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과일을 샀다.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파인애플만 있고 다른 하나는 여러 과일이 섞여 있었다.
내가 파인애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여러 색깔인 과일도 예뻐서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18페소라 하고 뭐라고 하길래 엉겁결에 '네' 했더니 여러 색 과일을 주었다. 대신 결정해주었네, 하고 걸어가면서 한 입 떠먹었더니 에구, 맛이 영 아니다. 과일을 섞어놓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치즈가루랑 매운 가루를 같이 넣었다. 그런데 그 매운 게 우리나라랑 다르다. 어떤 향이 더해져 있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고 반 정도 남은 그것, 지금 내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멕시코 사람들은 매운 것 참 좋아한다. 그런데 문제는, 매운 걸 잘 못 먹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 오색찬란한 과일 통을 들고 벤치에 앉아서, 이걸 들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니 매워서 헥헥대고 손부채질 하고 하늘 보고 난리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길에서 파는 따꼬를 먹을 때도 내가 어떻게 먹을지 몰라 옆에 있는 아저씨를 따라한 적이 있었다. 속에 녹색, 빨강 소스 같은 걸 잔뜩 넣길래 따라 넣고 한 입 먹었더니 꽤 매웠다. 나는 매운 거 잘 먹는다고 자신하던 터라 깜짝 놀라 옆에 아저씨를 바라봤더니 이 아저씨 눈에 눈물이 고여서 말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매우면 조금씩 넣어 먹지...
오늘 대강의 루트를 결정했다. Patzcuaro-Guanajuato-Zacatecas-Guadalajara 이렇게 빨리 보고 과테말라에서 한 달을 보낸 다음 약 2주 동안 멕시코시티로 올라와서 한국으로 가는 거다. 아니, 올라오는 길은 2주가 못되게 해서 한국에서 개강 때까지 일주일 이상 집에서 푹 쉬고 싶다. 게으른 녀석이, 생각 없이 사는 녀석이, 매일 저녁 예산 계산하고, 루트 잡고, 내일을 계획하려니 이만저만 피곤한 게 아니다.
지금의 감상
모렐리아는, 1년 후 내가 자원봉사로 멕시코에 6개월간 머무르게 되었을 때 자주 갔던 '대도시'다. 처음 갔던 모렐리아는 시골 같았지만.
컵과일 이름은 '가스파초'. 흔히 알고 있는 가스파초와는 다른 모렐리아만의 가스파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