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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라라 Nov 24. 2019

다이어트와 건강한 돼지 그 사이

P.T. 를 받고 있다. 12회씩 3번째를 마쳐간다. 헬스장에 등록할 때 상담을 하는데 운동  목표를 묻는다. 나는 "운동기구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요. 살도 빠지면 좋구요." 라고 답했다. 그런데 트레이너쌤은 앞 문장보다 뒷 문장을 강조해서 들었나 보다. 먹는 것을 찍어 보내라 하고, 이것을 먹어라 저것은 먹지 마라, 참견이 많다. 답답한 마음에 "쌤, 저는 그냥 평소처럼 먹고 운동만 조금씩 더 할래요. 그렇게 6개월, 1년 하면 조금씩 빠지겠지요." 했다. 그러자 트레이너 쌤이 "아니요. 그러면 안 빠져요. 건강한 돼지가 되죠."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건강한 돼지가 되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물음에 빠졌다.





스무몇 살 때 멕시코에서 6개월간 살았던 적이 있다. 명목은 자원봉사였으나 봉사를 하겠다는 숭고한 마음가짐은 아니었고 그저 한국의 힘든 삶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선택한 길이었다. 내가 갔던 '뽀뚜로'라는 작은 마을에 온 외국인은 내가 두 번째라고 했다. 첫 번째는 나보다 먼저 온 일본인 자원봉사자였다. 

그곳 고등학교에서 나는 영어를 가르쳤다. 그곳의 아이들은 뜨거운 멕시코의 햇살보다 더 뜨거웠고, 순수하고, 맑았다. 그 아이들에게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영어를 빨리 배우며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던 남학생이 있었다. 내가 종종 학교 마당의 높은 단상에 앉아 있으면 그 아이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 이 남학생이 저기 멀리 지나가는 여학생 두 명을 가리켰다. 늘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인 여학생 둘이었다. 

"나는 저기 왼쪽 아이를 좋아해요."

나도 모르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왜? 오른쪽 아이가 더 예쁘잖아."

"알아요. 하지만 마음은 왼쪽 아이가 더 예뻐요."

그 순간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뼛속까지 속물인 나의 모습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때 나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뿌리째 흔들렸다. 


다른 날은 또 다른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노래도 흉내내기도 잘하고 장난기가 많은 친구였다.

"선생님은 왜 배에 힘을 주고 다녀요?" 

"응? 무슨 말이야?"

물어본 학생이 나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나랑 똑같아서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더운 날씨에 붙는 민소매 티를 입은 나는 배에 힘을 주어 똥배를 집어넣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걸었던 것이다. 


그곳 아이들에게 몸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건강한 근육은 자랑거리였으나 두툼한 뱃살도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팔뚝의 근육을 자연스럽게 만지는 것만큼, 뱃살도 스스럼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남녀가 뾰족뾰족 날을 세우고 각자의 공간으로 숨어드는 지금의 한국사람들과는 반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친구인 남녀가 팔짱을 끼고 어깨에 손을 두르고, 외형과는 상관없이 자신감이 있고 스스로를 사랑했다. 


그들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우리와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너무나 멋졌고 부러웠다. 다이어트 빡세게 한 몸이든, 토실토실하고 부드러운 몸이든 모두 매력은 있는데 그것이 사람의 인상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나도 내 몸을 조금 더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에 똥배에 힘을 주지 않고 어깨에 자연스레 힘이 빠지니 똥배는 통~하고 나왔지만 나는 더 건강해짐을 느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몸, 어느 것이 우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깨에 힘이 빠지니 나의 호흡도 편안해지며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것이 마음의 건강을 주고, 마음의 건강은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단단한 근육이 되었다.





트레이너쌤에게 말했다. "저는 건강한 돼지가 될래요." 그리고 먹은 음식의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을 그만두었다. 조금 더 건강한 음식을 찾아 적당히 먹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마카롱 하나쯤 먹는 데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더는 없어졌다. 달다구리 한 입 먹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달콤함을 느끼며 행복을 찾을 수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나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멕시코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홀로 주장한다.

"흐음~ 난 역시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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