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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에도 영혼이 있다면

한 악기가 건너온 세 개의 시간

by Rani Ko

25년 전에 대학입학 기념으로 아버지께서 야@하 플룻을 사주셨다. 초보자에게는 꽤 괜찮은 모델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정식으로 악기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대신 하모니카를 혼자 익혔고, 틈날 때마다 불었다고 했다. 악보를 보고 배운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지만 소리를 내는 일 자체가 좋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들으며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현악기보다는 관악기에 마음이 기울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오랜 시간 기초를 쌓아야 하는 악기보다, 숨을 불어 바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가 나에게는 더 가까워 보였다.


내가 여렸을 적, 아버지는 가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모니카를 불어주셨다. 거창한 곡은 아니었고 ‘푸른 하늘 은하수’ 같은 동요였다. 그런데도 그 소리는 애달프기도 하고, 어딘가 구슬프게 들렸다. 아버지는 그 곡을 불 때면 어린 시절의 고향 생각과 함께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가 많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다 알지 못했지만, 소리에는 말보다 먼저 닿는 기억이 담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친구의 언니가 운영하는 작은 피아노 보습학원에서 초등생들 틈에 끼어 플룻을 배우기 시작했다. 따로 성인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개별적으로 봐주시는 거라 작은 방에서 혼자 레슨을 받을 때가 많았다. 우대 비스무리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결혼 전까지 20대의 10년 동안 꼬박 플룻을 배웠다. 띄엄띄엄이긴 해도 잊을 만하면 다시 꺼내 불었고, 한동안 구석에 방치했다가도 완전히 잊기 전에는 다시 손에 쥐었다. 숨이 지나간 자리만 남기는 소리라는 점에서, 플룻은 오래 기억에 남는 악기였다.




악기 하나, 운동 하나를 꾸준히 이어가는 일이 인생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럽 중산층의 가치로 종종 언급되는 태도다. *알랭 드 보통은 중산층의 삶을 설명하며, 예술과 취미를 생존과 무관한 사치가 아니라 삶의 불안을 견디게 하는 장치로 바라본다. 그의 에세이 속에서 음악은 성공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상과 노동의 피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등장한다. 악기 하나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은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치열했던 젊은 시절의 나는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피곤한 직장 생활을 마친 뒤에도 퇴근해 야간 대학원을 다녔고, 악기를 배우며 틈틈이 운동도 병행했다.


그러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악기는 자연스럽게 손에서 멀어졌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어쩌다 한 번씩 플룻을 꺼냈지만, 큰 아이를 출산한 이후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작은 방 구석에 놓인 악기 가방 위로 먼지만 차곡차곡 쌓여갔고,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플룻 가방 한쪽만 바라봐도 아버지가 떠올라, 한동안은 애써 못 본 척하며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이나 흘렀을까. 어느 날 플룻 가방에 쌓인 뽀얀 먼지를 털어 조심스레 악기를 꺼내보았다. 세월의 흔적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지 조금 낡아 있었지만, 작년 겨울부터는 큰 아이가 25년 전 내가 불던 바로 그 플룻을 다시 불고 있다. 1년 정도 배우더니 이제는 제법 곡을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연말에는 첫째가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악기 전문사를 찾아 전체적인 밸런스 체크와 클리닝도 한 번 받아볼 생각이다.


사실 아이에게 플룻을 등록해 준 이유는 단순했다. 집에 이미 악기가 있었고, 새로 시작하기에 부담이 적었다. 동시에 그 악기가 외할아버지가 사주신 악기라는 사실을, 나는 이 선택에 조용히 겹쳐두고 싶었다. 아직 아이에게 그 의미를 길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플룻이 단순한 금속 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과 마음을 건너온 물건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다행히 첫째는 악기를 배우는 일을 즐기는 눈치다. 평일에는 학원 스케줄에 쪼이다가도, 주말 아침에 플룻을 배우러 가는 시간만큼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나는 조금 고마웠다. 이제 곧 닥칠 사춘기를 이 악기가 아주 조금이라도 순화시켜 주기를, 마음이 거칠어질 때 숨을 고르듯 불어낼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기를 조용히 바란다. 아울러 둘째에게도 언젠가, 억지로 고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자신만의 악기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악기에도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렇게 사람의 시간을 건너다니는 방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각주

알랭 드 보통, 『불안』, 정영목 옮김, 청미래, 2005.
─ 중산층의 삶에서 예술·취미가 수행하는 정서적·윤리적 기능에 대한 논의를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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