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그린 크리스마스

2025.12.24

by Rani Ko


작년에 이어 올해도 녹색어머니회 봉사를 신청했다.

정작 우리 아이들은 큰 길을 건너는 등교를 하지 않지만, 첫째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학급회장을 맡으면서 의무이자 봉사로 신청하게 됐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 ‘누군가’에 올해도 이름이 올라간 셈이다.



지역 단체에서 도와주시던 교통지도는 날이 추워지면서 지원이 잠시 중단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녹색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녹색 봉사는 시간이 많아서 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봉사에 나오는 어머니들 가운데에는 맞벌이를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나 역시 작년에는 봉사를 마치고 그대로 출근했으니, 이 시간이 얼마나 빠듯한지 잘 알고 있다. 다들 각자의 하루를 잠시 쪼개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오늘 나와 함께 교통지도를 해주신 어머니는 아이가 셋인 분이었다. 세 아이 모두 매번 길을 건너 등하교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1년에 한 번은 꼭 이 활동을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대단한 결심처럼 들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활동이 끝나고 바로 출근하셔야 한다기에, 그냥 보내기가 마음에 걸려 커피를 한 잔 사드렸다. 뜨거운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손에 쥔 채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오래 남았다. 같은 워킹맘으로서 괜히 마음이 쓰였다. 작년에 나도 저랬었는데, 올해는 휴직 중이라 조금은 다른 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요즘 핫팩은 성능이 참 좋다. 녹색회장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핫팩을 양쪽 바지 주머니에 넣었더니 화상이 걱정될 정도로 뜨거워졌다. 손수 포장한 두유와 에너지바도 하나씩 건네주셨다. 나는 오늘 하루만 서 있으면 되지만, 회장님은 매일 이렇게 학교 앞을 돌며 인사를 나누실 것이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교통지도를 하며 서 있으니 평소에는 잘 보지 못하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초등학생들보다 인근 중학교 아이들이 더 위험해 보였다. 지각할까 봐 급하게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모습, 신호가 5초도 채 남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길을 건너는 모습들. 위험하니 다음에 가자며 제지하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아이도 있었다. ‘중2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다가도, 아직 중학생이 아닌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저렇게 변하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차선을 지키지 않는 차들도 여럿 보였다. 바쁜 아침이라는 건 알지만, 저렇게 서두른다고 몇 초, 몇 분 빨라질 뿐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여유가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안전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날이 흐려 30분 넘게 한 자리에 서 있으니 코끝이 아릴 정도로 추웠다. 그래도 뜨끈뜨끈한 핫팩과 커피 한 잔이 그 시간을 버티게 해주었다. 시작 전에는 고생스럽게만 느껴졌던 아침이었지만, 끝나고 나니 묘하게 마음에 남는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산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봉사였지만, 성탄절을 하루 앞둔 아침에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먼저 맞았다.
초록 조끼를 입고 서 있었던 이 시간 덕분에, 오늘 하루가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올해의 인사는 이렇게 남겨본다.
메리 그린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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