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도라미'에게 안부를 묻다

'이 사랑 통역되나요'를 본 뒤...

by Rani Ko
누구나 자신만의 ‘도라미’가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도라미’가 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순간이든 가슴 한구석에 사연 한 꼭지 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저마다의 사연이 쌓여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곧 한 사람의 형체가 된다.



요즘 재미있다는 드라마가 있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보았다. 아이들 방학 기간이라 평소보다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이지만, 짬짬이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하루 30분이라도 온전한 재충전의 시간을 사수하려 애쓴다. 정 여의치 않을 때는 화장실로 숨어들어 15분씩 두 번, 짧은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을 쥐어짜내어 드라마 한 편을 겨우 다 보았다.

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의 주인공 주호진은 다국어에 능통한 백마 탄 왕자님 같지만 실상은 길치인 데다 지나치게 신중하다. 완벽함 속에 빈틈을 가진, 어딘가 결핍이 있는 왕자님이다. 반면 차무희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전형적인 캔디형 인물이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도라미’**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냈다. 겉으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온 무희는, 도라미를 통해 비로소 쌓아두었던 속마음을 터뜨린다.



아무리 자기감정에 솔직한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마음속에 든 것을 오롯이 다 쏟아내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은 오죽할까. 속으로 삭히는 게 익숙한 나이기에, 무희의 또 다른 자아인 도라미에게 유독 마음이 가고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여러 개의 자아를 품고 살아간다. 남편과 아이들로 이루어진 지금의 가정 안에서의 나, 원가족인 친정에서의 나, 시댁에서의 나, 그리고 사회와 직장, 수많은 모임 속에서의 나까지. 때로는 외부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버거워 대중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이 꽉 들어찬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그저 수많은 승객 중 한 명으로 존재하며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마도 사회적 기대치라는 무거운 외투를 잠시 벗어던지고 대중이라는 커튼 뒤로 숨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시절, 이탈리아 베니스 여행 길에 친정엄마가 기념품으로 사 오신 화려한 도기 가면이 떠오른다. 지금도 친정 장식장 한 켠을 지키고 있는 그 가면을 볼 때면 생각한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가면무도회가 그토록 사랑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누군지 모른 채 만나는 짜릿함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편견’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파티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국 도라미의 모습 또한 차무희의 일부이듯, 여러 자아를 가진 나 역시 그 모든 파편이 합쳐져 지금의 ‘라니고’라는 사람을 이룬다.



어느 자아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이 흩어진 자아들을 부정하거나 분리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쳐 온전한 나라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가면이 결국 나를 지켜준 나의 얼굴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 쓰며 고군분투한 당신에게,
이 글이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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