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고 싶진 않지만, 연결은 되고 싶은
저는 수줍음이 많고 나를 드러내는 것이 서툰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는 이유는, 문장이라는 다리를 건너 당신에게 닿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주목받고 싶지 않으면서도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그 모순된 갈망에 대한 기록입니다. 저와 닮은 마음을 가진 당신에게 이 글이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를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다. 내 생각을 문장으로 빚어내다 보면, 결국 나의 파편들이 글 속에 스며든다. 직접적인 고백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나'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 뒤로 숨어보려 해도, 독자는 행간 사이에서 작가의 지문을 발견해내고야 만다. 인물의 대사 하나에도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작품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 허구 뒤에 숨겨진 작가의 진심과 소리 없는 공명을 나누는 일일지도 모른다.
에세이로 넘어오면 그 무게는 비할 바 없이 무거워진다. 에세이는 작가라는 사람을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과 같다. 최근 <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시리즈를 쓰면서 나는 이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몹시도 두려웠다. 내 아이는 세상이 말하는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영재아'가 아니었기에,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밝히는 것 자체가 커다란 부담이었다. 주목받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의 수많은 느린 학습자와 그 양육자들에게 닿고 싶었다. 우리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위안, 그리고 세상의 따뜻한 관심을 확인하고 싶은 갈망이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 앉혔다.
본래 내향적인(I) 기질을 가진 나에게 작가라는 위치는 참으로 모순적이다. 브런치라는 사유의 방에 사적인 나를 드러내는 일이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짐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글을 올린 뒤 라이킷(Likeit)이나 댓글이 적게 달리면 그게 또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나를 낱낱이 보여주기는 싫으면서도, 내 진심만큼은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원하는 이 기묘한 마음. 아마도 **'주목받고 싶지 않지만 주목받고 싶다'**는 말은 이런 복잡한 심경을 뜻하는 것이리라.
독자는 본능적으로 진실의 냄새를 맡는다. 꾸며낸 서사에는 결코 마음을 열지 않으며,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글은 쓰는 의미가 없기에 나는 오늘도 발가벗겨지는 두려움을 껴안고 **'진실함'**이라는 외길을 걷는다. 나의 내밀한 방을 개방하고, 그 문을 열고 들어올 타인의 시선을 기꺼이 견뎌내는 것. 그것이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작가로서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이 지독한 노출의 끝에서 만나는 기적 같은 연결 때문이다. 나의 가장 깊은 곳을 꺼내 놓았을 때, 누군가로부터 **"저도 그래요"**라는 응답이 돌아오는 순간, 그 찰나의 이해가 나를 드러내는 모든 부담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한다. 주목받고 싶지 않지만 연결되고 싶은 이 평행선 위에서, 나는 오늘도 두려움을 이기고 다음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작가의숙명 #내향인 #느린학습자 #글쓰기딜레마 #브런치작가 #라니코 #진실함 #연결의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