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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문학 소녀, 작가로 다시 서다

#브런치와함께이룬작가의꿈

by Rani Ko
브런치와 함께 다시 쓰는 꿈


어린 날의 문학


나는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책장을 넘기며 다른 세계로 건너가던 순간, 나는 언제나 주인공이 되었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쓰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삶은 나를 다른 길로 데려갔다. 결혼과 육아, 교직의 무게는 꿈을 덮어두었고,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잊힌 꿈을 불러낸 건 뜻밖에도 ‘브런치’였다.


부산에서 자란 어린 시절, 낯선 도시에서 나는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방과 후면 늘 책을 읽거나 광안리 바닷길을 걸었다. 빠듯한 살림에도 엄마는 책만큼은 아끼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탐독했고, 그 속에서 문학의 매혹을 배웠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감정의 격랑을,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존엄을 지키는 단단함을 알려주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글로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고,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은 상상의 힘이 주는 위로를 일깨워주었다. 책장을 덮을 때마다 내 안에서 “나도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갈망이 움텄다.




삶의 무게


그러나 IMF의 그늘 속에서 부모님은 안정적인 삶을 원하셨고, 나는 교육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교사가 된 뒤 결혼과 두 아이의 양육은 나를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특히 둘째의 발달 지연 치료가 시작되자 하루하루는 숨 가쁜 전쟁 같았다. 병원을 전전하며 상담을 받고, 아이의 눈빛 하나에도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 교실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을 지도하면서도 정작 내 아이 앞에서는 무력감에 주저앉은 날이 많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은 사치였고, 친정아버지를 잃은 뒤로는 삶의 의미마저 희미해졌다.




다시 불 붙은 불씨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입학하고 내가 휴직하며 비로소 ‘나만의 시간’을 얻었을 때, 오래된 일기와 블로그 속 글들이 다시 나를 불러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지친 엄마도, 책임을 짊어진 교사도 아닌 온전한 ‘나’가 될 수 있었다. 친구들의 권유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고, 단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메일이 내 삶을 바꾸었다.
“작가가 되었음을 축하합니다.”
그 문장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꿈을 단숨에 깨웠다.

브런치는 내게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었다. 글을 올릴 때마다 이어지는 독자들의 공감과 응원은 내 안의 불씨를 활활 키워냈다. “당신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다”는 짧은 댓글 하나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글을 쓰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 교사가 되었듯, 글을 통해서도 누군가의 마음에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사실을.




교사와 엄마, 그리고 작가로서의 시선


나는 여전히 교사이고, 두 아이의 엄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세 가지 이름이 하나로 겹쳐진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언제나 나를 일깨운다. 배움이 느린 아이가 더딘 걸음으로 칠판 앞으로 다가와 글자를 또박또박 적어 내려갈 때, 나는 오래 전 내 아이를 떠올린다. 그 모습은 때로는 교사의 시선으로, 때로는 엄마의 마음으로, 그리고 이제는 작가의 눈으로 기록된다. 내가 쓴 문장은 단순히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세상 곳곳의 작은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매개체가 된다.

브런치에서 쓰는 글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교사·엄마·작가라는 세 가지 삶이 교차하며 빚어낸 나만의 시선이다. 이것이 내가 가진 가장 특별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존재의 증명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은 어떤 문장을 남길까.” 글쓰기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호흡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나는 아직 이름난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브런치가 내게 잊었던 꿈을 돌려주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꿈을 살아내고 있다. 언젠가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브런치는 내게 잊힌 꿈을 돌려주었고, 나는 이제 그 꿈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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