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
화장품을 선물한다는 건,
‘당신도 잠깐은 당신 자신을 챙기라’는 조용한 속삭임이다.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지인들에게 화장품을 선물한다. 특별히 감사하거나 가까운 이들에게는 면세점에서 구입한 고급 화장품을 내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직접 써보고 마음에 든,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성분이 순한 제품을 고른다. 나이가 들며 면역력이 떨어져 켈로이드에 없던 아토피까지 생겼는데, 그런 내 피부에도 무난하게 쓰일 정도라면 믿을 만한 제품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인사치레일지 몰라도 지금껏 대다수의 지인들이 만족스러워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하루 일과를 마친 밤, 독서나 OTT 대신 나는 종종 화장품 쇼핑을 한다. 몇 년 전부터 하나의 취미처럼 굳어진 습관이다. 눈여겨보던 화장품이 세일을 하거나 ‘핫딜’이 뜨면 몇 개씩 쟁여둔다. 그러다 명절이 되면 그 제품들을 선물로 내놓는다. 마치 정부가 품질 좋은 곡식을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축했다가 시장에 푸는 것처럼 말이다.
품목은 매번 다르다. 기초 스킨케어 라인을 고를 때도 있고, 클렌징 제품을 택할 때도 있다. 때로는 강렬한 색감의 립스틱이나 아이섀도우 같은 색조 화장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내가 직접 사용해보고 만족했던 제품이라는 사실. 그중에서도 가성비가 뛰어난 아이템을 선별한다.
40대 여성의 일상은 참으로 분주하다. 직장에서는 위로는 60~70년대 상사들의 구태의연한 권위에 치이고, 아래로는 MZ세대 후배들의 빠른 변화 속도에 떠밀린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을 챙기고,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신경 쓸 일이 끊이지 않는다. 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20대에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 시간을 쏟을 수 있었고, 꾸미고 가꾸는 일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기초 화장만큼은 소홀히 할 수 없다. 피부는 곧 나이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피부결이 매끄럽고 촉촉하면 덜 늙어 보이고 생기 있어 보인다.
스킨, 로션, 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선크림도 빠뜨리지 않는다. 자기 전에는 반드시 클렌징 제품으로 화장을 지운다. 짧은 시간이지만,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힌 스킨을 꺼내 톡톡톡 두드려 바를 때면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된다. 바쁜 하루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한 의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아이가 가끔 알아채곤 한다. 둘째 준이는 내가 화장할 때면 다가와서 꼭 이렇게 말한다.
“엄마, 예쁘다.”
짧은 말이지만 참 따뜻하고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서 세안 후엔 더욱 기초 화장품을 챙겨 바르려 노력한다. 나만을 위한 화장이면서도, 동시에 아이에게 남겨줄 작은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화장품을 선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주변의 지인들 역시 대부분 30대, 40대, 혹은 50대 여성이다. 모두들 바쁘고,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런 이들에게 화장품을 선물하는 건 단순한 소비재의 전달이 아니라, 작은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행위다.
“당신이 바쁘고 지치더라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잊지 않기를.”
“나이듦이 단지 기력과 체력이 쇠하는 과정이 아니라, 성숙해지는 과정임을 기억하기를.”
“여전히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음을 잊지 않기를.”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은 이렇다. 나이듦이 서글플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여성성을 지켜내고 자기만의 빛을 잃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빛난다. 화장품이라는 작은 선물이 그런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자체로 선물 이상의 가치가 되지 않을까.
화장품을 고르고 선물하는 일은 결국 나와 지인들 모두를 위한 작은 의식이다. 내가 내 피부를 돌보며 잠시 숨을 고르듯, 지인들에게도 그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것이다. 단순한 명절 선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해 주는 마음의 응원으로.
그리고 어쩌면, 준이가 해준 그 한마디—“엄마, 예쁘다”—가 내가 오늘도 화장품을 선물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은 화장품 한 병에 마음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