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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 속에서, 오늘을 걷다

하늘공원에서 마주한 인생의 가을

by Rani Ko
하늘 공원에서 인생의 가을을 걷다

오늘 하늘공원에 다녀왔다.


억새가 끝없이 흔들리고,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전형적인 가을날씨를 온몸으로 흠뻑 느낄 수 있었다. 긴 연휴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이 많았다. 이른 시간에 출발했지만 이미 주차장은 만차에 가까웠다. 차를 세우고 나무 계단을 약 400여 개 오르면 억새숲으로 둘러싸인 하늘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KakaoTalk_20251009_211842773.jpg 이곳에서는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완연한 가을임을 알려준다.


남쪽으로는 한강 너머 여의도와 목동, 멀리 부천까지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강남의 스타타워와 잠실 롯데월드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북쪽에는 북한산과 남산타워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오늘은 비 대신 구름만 낀 날이라 덥지 않고, 산책하기엔 그야말로 완벽한 날씨였다.

KakaoTalk_20251009_212246019.jpg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여의도의 모습
KakaoTalk_20251009_212233395.jpg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목동의 모습

시간이 흐르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사계절 중 가장 온도와 습도가 적당한 이 시기,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 문득 ‘벌써 가을이구나’ 싶은 감탄과 함께, 달력의 마지막 장들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넘겨진다. 어릴 적엔 그렇게도 더디게 흘렀던 시간이, 중년의 시계 속에서는 몇 배의 속도로 달려간다. 수십 년 전 이곳은 쓰레기 더미로 악취가 가득했던 난지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와 억새숲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버려진 땅이 이렇게 변했듯, 시간은 흘러가며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그 변화 속에서 멈추지 않고 흐르는 매 순간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 오늘의 하늘이 가르쳐준다. 아이들은 그저 신나서 하늘공원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중년의 엄마와 아빠는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이 많아진다. 억새풀과 바람개비 풍력발전기 사이를 거닐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각각의 기억 속에서 떠올리고,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그러려면 육아의 필수 조건인 경제적인 기반은 어떻게 다져야 할지 이야기를 나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세속적이지 않은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결국 우리는 가장 세속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인생의 어느 계절을 걷고 있을까? 봄의 설렘과 여름의 뜨거움을 지나 막 가을에 접어든 시점일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조금 더 천천히, 더 깊게 익어가야 할 때가 아닐까.

KakaoTalk_20251009_211941189.jpg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을이 아닐까?


억새 사이를 걷다 보면, 멀리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아이를 안고 웃는 부모, 연신 사진을 찍는 연인들, 혼자 산책하는 노년의 뒷모습까지. 멀리서 보면 그들은 근심 걱정 하나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무게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볼 때는 다 아름다운 법이니까.


두 시간 남짓 머물다 길을 따라 내려오니,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한, 힐링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매일의 일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잠시의 휴식이 더 소중하고 빛나는 게 아닐까. 끝없이 반복되던 하루도, 이런 쉼표 하나로 다시 살아나듯이 말이다. 도심 속에서도 이렇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오늘 하늘공원에서 본 억새의 물결처럼, 내 삶도 때로는 흔들리되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잔잔한 바람 한 줄기, 따뜻한 햇살 한 조각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결국 삶의 가치는 흐름과 멈춤 사이에서 그 균형을 잃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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